경북 상주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의 온실에서 재배 중인 홍주씨들리스. /윤희훈 기자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내세워 인기를 끌며 귀한 대접을 받던 샤인머스캣의 지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익성이 좋다는 말에 포도농가들이 너도나도 샤인머스캣을 재배해 시장에 과잉공급한 게 화근이 됐다.

농가들이 비싼 가격을 받기 위해 정상 출하 시기보다 앞당겨 시장에 공급하면서 질적 하락까지 이어졌다. 붉거나 보랏빛이 도는 포도는 색깔을 토대로 소비자가 숙도(익은 정도)를 파악할 수 있지만, 청포도는 색상으로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빈틈을 노린 것이다. 이렇게 출하된 샤인머스캣은 당도가 기대치에 미흡했고, 과육의 크기도 일정치 않았다.

고급 과일로 취급되던 샤인머스캣은 흔한 과일이 됐고, 오히려 캠벨이나 머루포도 같은 기존 품종이 이제는 더 값을 받는 상황까지 왔다. 포도 산업의 위기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홍주씨들리스’가 조명을 받고 있다. ‘홍주씨들리스’의 홍주는 ‘붉을 홍(紅)’에 ‘붉을 주(朱)’를 쓴다. 붉은 구슬이라는 뜻으로 ‘구슬 주(珠)’를 쓰는 줄 알았더니, 붉은색을 표현하는 한자를 두번 연속 쓴 것이다. 그만큼 다른 포도 품종과 차별화되는 ‘붉은 빛’을 자랑한다. ‘씨들리스’는 씨가 없다는 뜻이다. 무핵과 과일로 따로 씨를 발라내지 않아도 돼 먹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홍주씨들리스는 머스캣 향과 과육이 아삭한 특성을 가진 ‘이탈리아’(품종명) 품종과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펄론’ 품종을 조합해 개발했다. 중량은 1송이에 약 500g 정도로, 샤인머스캣과 비슷하다. 당도는 평균 18~20브릭스 수준이다. 카테킨, 퀘세틴 등 항산화물질이 다른 포도 품종에 비해 20배나 많다.

고품질 제품으로 다른 품종에 비해 ㎏당 단가가 2배 수준이다. 농가 입장에선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품종인 것이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도가 다른 품종보다 예민해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상품성을 갖추기 위해선 과실의 크기가 일정해야 하고, 색깔도 선명한 빨간색이 들어야 한다. 3~4월에 냉해를 입거나, 장마철에 일조량이 부족하거나 잎이 비를 맞으면 노균병이 잘 생긴다. 노균병은 나뭇잎 뒷면에 곰팡이가 피는 것처럼 번져 잎이 노랗게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으로 치면 무좀병이라 할 수 있다.

작년말 기준 국내에서 홍주씨들리스를 재배하는 면적은 73헥타르(ha) 정도다. 전체 포도 재배 면적(1만3349ha)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김시호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 대표가 25일 재배 중인 홍주 씨들리스를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최근 들어선 경북 상주와 충남 홍성에서 재배지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옛 지명이 ‘홍주’인 홍성군은 ‘홍주씨들리스’를 지역 특산품으로 육성하겠단 계획을 갖고 있다.

홍주 씨들리스가 포도 산업의 새로운 유망주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5일 경북 상주에서 홍주씨들리스를 재배하는 청실홍실영농조합법인의 김시호 대표와 포도 전문가인 허윤영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시중에 샤인머스캣이 너무 풀렸다. 얼마 전 사당역사 안에서 샤인머스캣을 팔던데, 4송이(2kg)을 1만원에 팔더라.

(김시호 대표) “샤인머스캣이 완전 박살이 났다. 지금은 오히려 캠벨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 가락시장 경매기록을 보면 캠벨은 10페이지를 넘기는데, 샤인머스캣은 100페이지가 넘는다. 그만큼 시장으로 많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가격도 역전됐다. 샤인머스캣 2kg이 1만2000원에 거래되는데, 캠벨은 3kg에 2만7000원을 받더라.”

ㅡ홍주 씨들리스는 사정이 좀 더 낫나.

“그렇진 않다. 홍주씨들리스도 샤인머스캣과 비슷한 흐름을 탄다.”

ㅡ수익성은 어떤가.

“솔직히 좋진 않다. 홍주씨들리스는 재배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또 고상품성의 과일을 수확하기가 쉽지 않다. 맛과 착색, 병충해 예방 등에 다른 포도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올해는 초봄에 냉해 피해를 입어 과육 생장이 원할하지 않았다. 시장에 팔지 못할 포도가 많이 나왔다.”

ㅡ샤인머스캣보다 재배가 어렵나 보다.

“청포도에 비해 색깔을 내는 게 정말 어렵다. 샤인머스캣 같은 청포도류는 외관 색상으로 당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저품질의 샤인머스캣이 시중에 많이 풀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색깔만 보고 어떤 게 더 맛있을지 판단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허윤영(왼쪽) 농업연구사와 임동준 농업연구사가 25일 경북 상주의 영농조합법인이 재배 중인 홍주씨들리스의 생육 상태를 살피고 있다. /윤희훈 기자

ㅡ냉해를 입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허윤영 연구사) “냉해를 입으면 착색이 잘 안된다. 그리고 알갱이 사이즈도 제각각이다. 붉은색이나 보라색 포도는 색깔이 품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ㅡ비닐하우스를 했는데, 일조량이 부족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포도 생장에 필요한 일조량은 충분하다. 포도는 햇빛도 중요하지만, 비를 맞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나뭇잎이 비를 맞으면 노균병이 생긴다. 노균병이 심해지면 잎이 떨어진다. 잎이 떨어진 줄기는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해 포도에 영양분을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ㅡ품종은 어떻게 개발했나.

“1996년 ‘이탈리아(Italia)’에 ‘펄론(Perlon)’을 교배하여 얻은 과실 중에서 2013년 최종 선발했고, 최근 들어 재배 농가가 계속 늘고 있다.”

ㅡ특징을 설명해달라.

“맛이 새콤달콤하다. 씨가 없는 무핵 품종이지만 생장조정제 처리 없이도 포도 알의 무게가 6.0g으로 큰 편이다. 친환경농가가 선호할 품종이다. 씨가 없어 이물감 없이 먹을 수 있고, 에피카테킨·캠프페롤·쿼세틴·레스베라트롤 등 7개 항산화 물질 함량이 외국산 포도보다 많다.”

ㅡ재배 시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나.

“배수가 안 좋은 곳에 나무를 심으면 여름철 일소(햇볕에 많이 노출된 부분의 포도가 갈색으로 변하며 말라감), 축과(과실이 줄어듦), 열과(익은 포도알이 터짐)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나무 사이 간격도 어린나무는 3∼5m, 다 자란 나무는 7∼10m로 넓게 하는 것이 좋다. 흰가루병, 노균병, 총채벌레 방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

ㅡ또 개발 중인 포도가 있나.

“가장 최근에 육종한 품종은 껍질째 먹는 솜사탕향 씨 없는 포도 ‘슈팅스타’다. 붉은색과 연녹색이 섞인 외관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과육 경도가 높고 탈립이 적어 유통에 유리한 품종이다.”

ㅡ끝으로 포도 잘 고르는 법 좀 알려달라.

“포도는 품종 고유의 색이 진하고, 탄력이 있어야 한다. 송이 줄기도 녹색인 게 신선한 포도다. 포도알 표면에 흰 과분이 많은 게 좋다. 흰색의 과분은 포도알 내부로부터 분비된 천연물질로, 포도가 잘 익었다는 지표다. 반대로 포도알이 쉽게 떨어지거나, 표면이 주름진 것, 송이 줄기가 갈색으로 변색된 것은 오래된 것이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도는 송이 윗부분이 가장 맛있다. 포도를 내오면 위쪽부터 드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