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빛도 소음도 모두 삼켜진 지난 21일 새벽 3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 9층 국제금융센터 세계경제분석실 사무실 한켠만이 홀로 백색 형광등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날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미국을 담당하는 글로벌경제부 직원 3명이 새벽 2시부터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시작할 채비를 했다.

미 연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5.25~5.50%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새벽 3시 30분 기준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하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낮은 톤의 목소리가 국금센터 사무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미 워싱턴DC의 기자회견장에도 같은 목소리가 퍼지고 있을 터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발표된 지난 21일 새벽, 윤인구 국제금융센터 글로벌경제부장이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실시간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박소정 기자

사각사각, 좌악, 타닥타닥. 중계되는 영어 음성 위로 급박하게 펜을 휘갈기는 소리, 다 채워진 메모장이 찢기는 소리, 자판을 연타하는 소리가 뒤섞였다. '파월의 입'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사무실 공간은 직원들의 말소리 하나 없어 고요했지만, 그들의 손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선 분주함이 느껴졌다.

지난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발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 동안 윤인구 국제금융센터 글로벌경제부장이 휘갈겨 쓴 메모. /박소정 기자

윤인구 부장이 글씨를 빼곡히 채운 노란 메모장에는 '양방향 리스크 확대(The risk of over-tightening and under-tightening is becoming more equal)', '금리를 더 올릴 준비가 돼 있다(We are prepared to raise rates further if appropriate)' 등의 문장이 적혔다.

윤 부장은 "그간 긴축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과도 긴축이냐, 과소 긴축이냐를 판단할 적정선에 온 시점이라는 미 연준의 판단이 있었다"며 "여기에 내년, 내후년 점도표 상향을 통해 기존 전망 대비 '긴축' 쪽에 힘을 싣는 매파적인 통화정책 입장을 뚜렷하게 전달했다"고 분석했다.

박미정 부연구위원은 기준금리 발표 직후부터 파월 의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움직이는 주식과 채권시장을 체크했다. 이날 기준금리 동결이 발표되자 뉴욕증시는 뚝 떨어졌고, 미 국채 금리는 치솟았다. 정예지 연구원은 외신에서 나오는 헤드라인들을 정리했다. 블룸버그에서는 "미국 2년물 국채금리가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발표되는 지난 21일 새벽, 국제금융센터 글로벌경제부 직원이 업무를 하고 있다. 시계가 오전 4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박소정 기자

새벽 4시 30분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자 모든 소리가 멎었다. 사실 이들의 진짜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 연준 기준금리 발표의 의의와 해외 언론의 시각, 그리고 시장의 반응을 총망라해 6~7쪽짜리 보고서로 요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한 시간은 2시간 반 남짓.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가 시작하기 직전인 오전 7시까지다.

동이 트고 보고서 초안이 완성됐다. 황인선 국금센터 부원장이 빠르게 초안을 훑으며 최종 검수를 했다. "'연말'보다는 '연내'란 단어가 나을 거 같은데…",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본 해외 IB 반응이 대체적이라는 부분 있잖아, '엇갈렸다'는 표현을 담아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시각도 담아줘" 등의 피드백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황 부원장은 "보고서의 정확성이 국금센터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기에, 시급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확성 여부를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오전 7시 황인선 국제금융센터 부원장이 글로벌경제부원들이 작성한 '9월 FOMC 주요 결과 및 국제금융시장 동향' 보고서 초안을 최종 검수하고 있다. /박소정 기자

오전 7시 10분 이렇게 '최종본'이 완성됐다. 출력을 기다리는 윤 부장의 얼굴에 안도감과 지친 기색이 공존했다. '노타이' 차림이었던 그가 넥타이를 단정히 매기 시작했다. 보고서 뭉텅이를 안아든 윤 부장은 회의가 열리는 같은 건물 14층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오전 7시 30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석하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장의 문이 닫혔다. 이곳에서 윤 부장은 새벽 간 국제 금융시장 동향에 대해 '첫 타자'로 브리핑을 하게 될 터였다.

지난 21일 오전 7시 10분 윤인구 국제금융센터 글로벌경제부장이 완성된 '9월 FOMC 주요 결과 및 국제금융시장 동향' 보고서를 출력해 훑어보고 있다. /박소정 기자

비단 FOMC가 아니더라도 국금센터는 하루하루 이와 비슷하게 돌아간다.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해외동향부 직원 3명이 출근해, 간밤 세계 금융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요 뉴스와 시각을 정리한 6쪽짜리 '일일 속보'를 아침 7시까지 만들어 낸다. 일일 속보는 설립 이래 한 번도 펑크난 적 없다.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는 당직자가, 밤 10시부터 아침까진 미국 뉴욕 사무소 직원들이 교대로 보초를 서, 24시간 시장을 감시한다. 2001년 9·11 사태, 2008년 리먼 사태 같은 위기가 실제로 발생하면 자다가도 전 직원이 센터로 달려올 준비가 돼 있다.

IMF 외환위기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며 1999년 만들어진 국금센터는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금융시장의 각종 위기 신호를 누구보다 신속히 감지해 내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금융위기 경보실'이다. 우리나라 경제 콘트롤타워는 밤사이 일어난 광활한 세계 시장의 움직임들을 국금센터의 보고로 가장 먼저 안다. 경제 위기 때마다 적절한 정책을 구사하는 경제·금융 수장들이 메스를 든 '집도의'라면, 국금센터는 이들에게 재빨리, 정확한 상태를 진단해 전달하는 '주치의'와 같은 존재다.

여느 직장인들은 이제 막 출근을 마쳤을 오전 10시, FOMC 업무를 마친 국금센터 새벽조는 비로소 퇴근길이었다. 아침 햇살과 찬 공기를 맞으며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듯 그들의 얼굴이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