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시. 서울 강남구 수서동 수서역 플랫폼의 수서고속철도(SRT) 선로에는 파란색의 길고 미끈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차량이 자리하고 있었다. 열차 안에는 성인 남성이 양팔을 뻗어도 절반도 두르기 힘든 크기의 물탱크가 일렬로 가득 차 있었다.
GTX-A 차량이 개당 무게 1.5톤(t)의 물탱크를 태우고 달리는 것은 만차일 때를 가정해 운행하기 때문이다. 8량으로 이뤄진 GTX-A 차량에는 1062명이 탑승할 수 있다. 승객 한 명당 70kg으로 가정하면 물탱크 하나가 승객 20명을 태운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열차에 물통이 가득 차 있는 탓에 시운전 차량에 탑승할 때는 물통 사이사이에 끼어 탔다. 열차 안에는 비닐이나 케이블 등이 널려있어 아직 개시하지 않은 '새 차'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핏 보면 KTX와 SRT 등 고속철도 차량과 겉모습이 비슷해 보였지만, 문의 크기와 승하차 구간 높이 등 다른 점들이 있었다. GTX-A 차량 문의 폭은 1.3m에 달한다. 지하철을 달리는 전동차 차량 문의 폭이 1.1m인 것보다 더 크다.
이원상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연구소장은 "1062명이 한꺼번에 타고 한꺼번에 내려야해 문의 폭을 키웠다"라며 "문을 닫는 방식도 지하철처럼 양옆으로 열리는 슬라이딩 방식이 아닌 바깥으로 열리는 '와이드타입 플러그인' 방식으로 제작해 소음 예방과 기밀(氣密) 성능을 높였다"고 말했다.
차량은 최고 속도인 시속 180km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로 달린다. 이날 시운전은 시속 130~170km로 진행됐다. 현대로템에 따르면 지하철은 통상 80~100km/h, 새마을호는 150km/h, 공항철도 급행은 160km/h로 달린다.
GTX는 지하 40m 이상의 '대심도'에 건설되는 만큼 창밖이 캄캄해 속도감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이날 수서에서 출발해 동탄까지 이동하는 데는 20분이 걸렸다.
열차 한 칸에는 벽 쪽으로 7개씩 총 14개의 좌석이 있었다. 지하철에 흔히 볼 수 있는 분홍색 의자인 '임산부 배려석'도 보였다. 좌석에는 칸을 분리하는 좌석 분리대가 설치돼 있었다. 좌석 위쪽으로 손잡이가 있었지만, 짐을 놓는 공간은 없었다.
GTX-A 차량을 타는 1000여명의 승객 중 중 300여 명은 앉아 가고 700여 명은 서서 가게 된다. 이날 기자단 대부분도 좌석에 앉기보다는 서서 이동했다.
GTX-A 열차가 최고 속도까지 높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8초다. 열차가 출발하고 운행하는 동안 큰 흔들림이나 소음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선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지날 때나 정차할 때면 맨몸으로 서 있기 불안할 정도로 휘청였다. 좌석 수가 적고 대부분 입석으로 이동해야 하는 만큼 몇 사람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 인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GTX-A노선은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와 서울 삼성동, 화성 동탄신도시 등 83.1㎞ 구간을 지난다. 개통되면 운정신도시에서 서울역까지 20분대, 삼성역까지는 30분대에 갈 수 있다.
GTX-A 차량과 같이 새로 도입되는 차량은 설계대로 제작됐는지 검증하는 '시운전' 절차를 밟게 된다. 수서~동탄 구간 차량 시운전을 시작으로 건설 공사가 모두 끝나 시설물 검증 등 종합시험 운행을 거쳐 GTX-A가 개통된다.
GTX-A 차량은 지난해 말 출고돼 오송 시험 선로에서 1단계 시운전을 마쳤다. 이후 차량은 2단계 시운전을 위해 GTX-A와 SRT가 공용 운행하게 될 수서~동탄 고속철도 구간으로 옮겨졌다. GTX-A 차량은 지난달 27일부터 SRT가 운행하지 않는 심야시간(오전 1시 20분~4시 40분)을 활용해 현재까지 주 1회, 총 4차례의 시운전을 진행했다.
현대로템은 다음 달 17일부터 주간에 SRT 운행 시간을 피해 시운전을 실시할 계획이다. GTX-A 노선의 건설공사가 완료될 올해 말부터는 정거장별 정차가 시작되고, 승하차 환경도 평가하는 3단계 시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GTX-A 노선의 노반, 궤도, 시스템, 전력 등 주요 건설공사는 올해 말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실적 공정률은 78.3%로 계획 공정률인 75.3%를 웃돌았다. 올해 말 건설공사가 완료되면 GTX-A 개통의 '최종 관문'인 종합시험 운행에 돌입하게 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GTX-A 차량에 직접 시승했다. 원 장관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시운전을 위해 고생하는 관계자에게 감사하다"면서도 "적기 개통이 중요하다 해도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시운전 과정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길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