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이 26배라는 것은 연간 평균 가계소득을 26년간 모아야 주택 가격에 맞출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집값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제 결혼한 부부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4일 홍경식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은 '9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발간 후 가진 설명회에서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이 26배에 달한다는 수치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PIR은 주택가격의 적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 집값이 소득 등 우리나라 여러 경제 요인을 고려할 때 여전히 비싼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주담대 중심으로 가계부채 급증...일관된 부동산 정책 필요
한국은행은 지난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5%에서 올해 1월까지 3.5%로, 3%포인트 끌어올린 후 다섯 차례 동결을 유지하고 있다. 상당 기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부동산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는 매달 급증하는 추세다. 가계대출은 올해 4월부터 주택관련 대출 중심으로 늘어나면서 5개월 연속 늘어나 25조원 넘게 몸집을 키웠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민간부채 증가세 지속, 수도권 주택가격의 상승세 확대 등으로 실물과 금융 간 불균형이 다시 확대되고 있다"며 "특히 가계부채는 정책금융 지원 등 공급요인과 주택가격 상승 기대에 따른 수요요인이 중첩되면서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정책대응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목표로 연초부터 각종 대출규제를 완화하면서 대출이 크게 늘어났다. 규제 완화 이후 국내 주택시장은 7월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오르고, 거래량도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80%를 넘어서면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100%를 넘는 수준이다. 이미 부채가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한은은 가계대출 질이 나빠지고 있는 점도 우려 요소로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취약차주의 연체율은 전체 차주에 비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부실화 위험이 높아지고 소비 여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최근 집값이 빠르게 반등했지만, 앞으로는 상‧하방 요인이 혼재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상방 요인으로는 서울지역 공급 감소, 세제 관련 규제 완화 등이 꼽혔다. 하방 요인으로는 고금리 환경의 지속, 전세가격 하락 등으로 거래량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됐다.
한은은 당분간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대출은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넷전문은행 주택담보대출 현황 점검, 50년 만기 주담대 중단, 특례보금자리론 정책 조정 등으로 항후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실물과 금융 간 괴리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금융 불균형이 심화한 상황에서 중장기 안정 성장을 도모하려면 금융 불균형이 일정 수준 이하에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경식 국장은 현재 가계부채가 부동산에 쏠린 점을 우려하며 "가계부채 적정 규모는 산정할 수 없지만, 분명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은 맞는다"며 "중장기적 시계에서 디레버리징을 지속하기 위한 정책당국 간 일관성 있는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상조...상당 기간 고금리 기조 이어질 것"
이날 한국은행은 향후 물가 경로가 상당히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인플레이션 목표수준인 2%에 안착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도 말했다. 실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7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2%대를 기록했지만, 8월 들어 3.4%로 뛰었다.
특히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달 들어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선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까지 3% 내외 수준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에 이어 원·달러 환율변동성이 커진 점도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이어 누적된 비용상승 요인의 지속, 중국의 방한 단체관광 재개·초과 저축으로 인한 수요 측 압력, 공공요금 인상 관련 불확실성 등도 물가 오름세 둔화 흐름을 지연시킬 요인으로 지목됐다.
중국발 수출 부진 등에 따른 성장세 회복 지연 가능성도 거론됐다. 중국 부동산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간 소비 회복도 더뎌 대(對)중 수출이 부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중국의 공급망 내재화 노력으로 중간재 수입 수요가 감소하고, 최종재 시장에서도 한국과 중국 간 제품 경합도가 높아지면서 대중 수출 부진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