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의 연간 대중(對中) 무역수지가 한중 수교 3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 전환하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7월까지 누적 적자가 144억달러에 달하는 데다 양국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서다. 남은 5개월 동안 대중 무역수지가 흑자 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부동산 버블을 중심으로 부상한 ‘차이나 리스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한국 통상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이 ‘쌍순환’이라 불리는 내수 강화 정책을 앞세워 수입에 의존해온 반도체 등 주요 중간재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는 사실은 우리 수출에 더 큰 악재다. 경기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한국이 예전처럼 대중 무역에서 재미를 보긴 힘들다는 의미여서다.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수출 다변화 정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올해 우리나라의 연간 대중 무역수지는 한중 수교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적자 전환할 예정이다. 수출입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에 입항하고 있다. / 연합뉴스

◇ 7월까지 대중 무역수지 144억달러 적자

26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수지는 한중 수교를 맺은 당해인 1992년 10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을 빼고 1993년부터 2022년까지 30년 동안 흑자 행진을 이어왔다. 한중 수교는 1992년 8월 24일에 공식 체결됐다. 수교국으로서 온전히 교역을 시작한 해가 1993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수교 이후로는 쭉 대중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해온 셈이다.

그러나 올해는 한중 수교 이래 처음으로 연간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144억달러 적자다.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실적을 더 두고 봐야 하지만, 누적된 적자 규모가 이미 크고 두 나라 경기 상황도 좋지 않아 연간 무역수지 역시 적자로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악화로 수입도 줄긴 했으나 수출이 더 크게 흔들려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주는 모양새다. 관세청에 따르면 대중 수출은 작년 6월 0.8% 감소를 시작으로 지난달(-25.1%)까지 14개월 연속 뒷걸음질쳤다. 이달 들어서도 20일까지 대중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5% 줄었다.

그래픽=손민균

◇ 中 부동산 침체에 생산·소비 둔화

정치적 관계와 무관하게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우리나라의 전체 교역액(7398억달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9%에 달한다. 30년 만의 첫 연간 대중 무역수지 적자를 앞둔 통상 당국이 심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중국의 경제 체력이 당분간 계속 바닥을 길 것 같다는 점이다. 한국 제품을 팍팍 사주기 어렵다는 의미다. 중국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건설 위주 성장 모델을 앞세워 지난 40여 년 동안 고도성장해왔다. 그러나 정부 자금을 동원한 기반시설 투자와 부동산 개발의 경기 부양 효과가 점점 떨어지면서 현재는 심각한 비효율과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는 중국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퍼뜨려 소비·생산 심리를 억눌렀다. 중국의 7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인 지난 3월 10.6%까지 올랐으나 증가 속도가 더뎌졌다. 7월 산업생산 증가율도 3.7%로 시장 전망치(4.5%)를 밑돌았다.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지역전략팀장은 “중국 부동산 리스크가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확산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며 “부동산 문제는 금융 등 다른 섹터의 불안으로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건설 위주 성장 모델을 앞세워 지난 40여 년 동안 급성장했다. 그러나 현재는 심각한 비효율과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8월 15일 중국 상하이의 한 건설 현장에서 빌딩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 한국산 수입 비중 계속 줄여온 중국

경기 둔화와 별개로 중국 정부가 수입에 의존했던 여러 중간재를 자국산으로 바꾸는 내재화 작업을 계속 추진해왔다는 사실도 한국 수출에는 악재다. 한국의 주력 대중 수출품은 반도체, 화학제품, 무선통신기기 부품, 액정표시장치(LCD), 반도체 제조 장비 등 중간재가 많다. 기술력이 취약했던 과거에는 중국이 이들 중간재 상당수를 수입해 썼다. 현재는 자체 기술 개발과 관련 산업 육성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도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선 과학기술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반도체·항공우주·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 공략을 위한 ‘신형거국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출 정책을 구사해온 한국으로선 향후 세계 경기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중국을 상대로 예전처럼 대규모 흑자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수입에서 한국산 비중은 2015년 7.1%였으나 2017년 6.9%, 2019년 6.2%, 2022년 5.8%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연 팀장은 “글로벌 경기 흐름이나 주요국 간 관계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10여 년 전부터 중국이 한국 비중을 꾸준히 줄여왔다는 건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준다”며 “수출 다변화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