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에서 돈을 빌린 가계대출자 중 약 300만명은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태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5만명은 소득보다 갚아야 하는 이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부동산·주식 투자, 생활고 등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지난 2년간 이어진 금리 상승으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불어난 이자 부담이 저소득층, 다중채무자 등 취약차주의 대출 부실화로 이어져 금융 불안을 키우고 민간 소비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가계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2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가계대출 차주(대출자) 수는 모두 1977만명이며, 이들의 대출 잔액은 1845조3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대출자 수와 대출 잔액이 각각 4만명, 15조5000억원 줄었지만, 감소율은 0.2%, 0.8%로 미미했다. 1인당 평균 대출잔액도 3개월 사이 9392만원에서 9334만원으로 0.6%(58만원)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전체 가계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3%로 집계됐다. 대출자들이 평균 연 소득의 40% 정도를 금융기관에서 진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의미다. DSR는 지난해 4분기 40%대로 올라선 뒤 내려오지 않고 있다.

DSR이 100% 이상인 차주도 전체의 8.9%에 육박했다. 약 175만명은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과 같거나 소득보다 많다는 뜻이다. 이 비중은 2020년 3분기(7.6%) 이후 2년 6개월 연속 올랐다. DSR이 70% 이상, 100% 미만인 대출자 124만명(6.3%)까지 더하면 DSR 70% 이상 대출자 수는 299만명(15.2%)까지 늘어난다.

일반적으로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DSR이 70% 정도면 최저 생계비만 빼고 거의 모든 소득을 원리금 상환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으로 평가한다. 현재 약 300만명 대출자가 원리금 부담 탓에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차주 수가 아닌 대출잔액 기준으로는 DSR 70% 이상인 가계대출의 비중이 1분기 말 기준 41.4%에 달한다.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쓰고 소득과 신용도까지 낮은 대출자들의 DSR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자’는 1분기 말 226만명이었다.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과 1인당 평균 잔액은 각 31조2000억원, 1억20898만원으로 추산됐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DSR은 62%로, 직전 분기보다 0.8%포인트(p) 떨어졌지만, 여전히 소득의 6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하는 상황이다.

다중채무자 수와 대출 잔액의 각 29.1%(129만명), 53.5%(307조8000억원)가 ‘DSR 70% 이상’에 해당된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취약차주’의 경우 1분기 말 현재 DSR이 평균 67%였다.

취약차주의 경우 1인당 평균 대출액이 3개월 사이 7474만원에서 7582만원으로 오히려 늘면서 DSR도 66.6%에서 0.4%p 더 높아졌다. 취약차주 37.3%(46만명)의 DSR이 70% 이상이었고, 이들의 대출은 전체 취약차주 대출액의 68%(64조3000억원)를 차지했다.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을 보유한 차주가 많기 때문에 대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금융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83%로 1년 전(0.56%)보다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2020~2021년 저금리 환경에서 잠재되어 있던 취약차주의 가계대출 관련 리스크가 금리 상승 등으로 나타나면서 연체율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융권 전반에서 오르고 있다”며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연체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날 수 있는 만큼,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과 정부·감독 당국의 신규 연체채권 추이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