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 검은색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적정 공사기간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작업에 나섰다. 주 52시간 체제가 정착되고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충분한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는데 정부가 기존에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빈 틈이 많다. 정부는 안전사고를 줄이는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적정공기 산정을 위한 작업 일수 기준 개선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적정 공사기간 가이드라인은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제작돼 2022년에 한 차례 개정됐다.

건설기술 진흥법 제45조 2에 따르면 공사 발주자는 적정 공사기간을 산정할 의무가 있다. 발주청은 국토부의 공사기간 산정기준에 따라 적정 공사 시간을 산정하고 조정해야 한다. 특히 총공사비 100억원(시군구 5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의 발주청은 공사기간 산정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사기간은 설계도를 검토하고 하도급업체를 선정하는 등의 준비기간과 비작업일수, 작업 일수, 정리 기간을 포함해 산정한다. 일반 건축물의 경우 준비기간, 토목공사, 기초공사, 지하·지상 골조 공사, 마감공사 등의 기간마다 1일 작업량 기준이 제시된다.

국토부는 이번에 가이드라인을 수정하면서 일부 공종에 대해서만 마련돼 있던 1일 작업량 기반의 공사기간 기준을 전체 공종으로 확대한다. 예를 들어 토목공사의 경우 기존에는 도로, 고속·일반철도에 대한 적정 공사기간만 제시됐다. 국토부는 도시철도와 댐·상하수도를 건설하는 경우에도 적정 공사기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건축공사의 경우에도 냉방 시설이나 공동 시설 등을 마련하는 기계설비나 마감공사 과정에 대한 적정 공사기간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가설·토공사·기초공사·철근콘크리트공사 등에만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국토부는 공사기간 산정 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1일 작업량 기반의 공사기간 기준 정비 및 표준공정표 마련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2년 개정된 '적정 공사기간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비작업일수 산정을 위한 기상조건 적용 기준 설정. /국토교통부 제공

적정 공사기간 가이드라인은 2022년 기후변화 등을 반영해 1차 수정된 바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전국적으로 폭염일수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건설 현장에서 온열질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작업일수 산정에 기온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콘크리트 공사나 옹벽 공사를 할 때 작업 시작 전 후로 33℃ 이하의 날씨여야 작업을 하도록 제시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기준에 따라 건설 현장의 가동률을 조정하거나 작업시간을 단축 운영해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국토부는 이번 용역을 통해 가이드라인 3차 개정안을 만들고 주요 발주청 및 유관협회의 의견을 듣는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건축공사 작업 일수 산정기준에 대한 전문가 자문회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이번 연구로 모든 공종별 1일 작업량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면 안전사고 사상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며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공사기간이 촉박하다는 업계의 요구 가이드라인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가이드라인은 공사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위주로 제시됐었다. 이번엔 세부적인 부분까지 완비할 예정”이라며 “도시철도나 상하수도를 건설하는 경우 등 다양한 공사에도 적정한 기간을 제공하도록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에선 발주자가 적정 공사기간을 확보할 의무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사기간 가이드라인을 세우지 않는다고 해서 벌칙이나 벌금 등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공사의 경우 가이드라인 적용을 받지 않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국토부 고시로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민간공사는 시공사가 발주자에게 적정한 공사기간을 요구하기 어렵다”면서 “공사기간을 무리하게 맞추기 위해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고, 민간공사에도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