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석 한국양봉농협 이사가 5월 26일 철원 자등리 양봉장에서 벌꿀통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윤희훈 기자

“저희는 올해 벌꿀 생산량이 반토막이 났어요. 양봉 농가 사이에서 반토막이면 선방했다고 해요. 3분의 1토막이 난 농민들도 적잖아요. 그런데 정부에선 ‘자연 감소 수준’이라고 해요. 도대체 현장을 와보고, 농민들 이야기는 들어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지난달 26일 강원 철원 자등리 인근에서 양봉을 하던 정상석(60·한국양봉농협 이사)씨는 기자를 만나 올해 양봉이 너무 어렵다며 이같이 푸념했다. 정 이사는 25살 때 선대를 이어 양봉업에 뛰어들었다. 올해로 35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양봉 분야에선 산전수전을 겪은 그이지만 작년부터 발생한 ‘꿀벌 실종’ 사태는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예년에는 양봉통을 300개 이상 갖고 나왔어요. 그런데 올해는 120개가 전부에요. 월동기에 벌들이 다 죽어 벌통을 겨우 20개만 살렸어요. 그리고 다른 농가로부터 양봉통을 100개 샀어요. 다른 집들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귀해진 양봉통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어요. 25만원 하던 게 올해는 40만원, 2년 새 80%가 올랐어요. 올해 양봉통 100개를 사는 데만 4000만원을 썼어요. 벌통이 줄어드니 당연히 벌꿀 채취량도 줄었죠. 다른 농가도 비슷할 거에요.”

양봉통은 꿀벌의 집이다. 벌통(봉군) 1개에는 여왕벌 1마리와 수벌 수백마리, 그리고 일벌 수천~수만마리가 군집을 이룬다. 여왕벌은 산란만 하며 최대 5년 동안 생존한다. 양봉통에 친 벌집을 잘 관리하면 5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벌집인 양봉통은 양봉 농민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월동기 벌집을 잘 지켜 이듬해 개화기에 다시 꿀을 채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집을 소실한 농민은 벌꿀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농가로부터 비용을 지불하고 벌집을 양도받기도 한다.

정 이사의 옆에 있던 다른 양봉민은 “올해는 월동 결과가 어떨지 의문”이라며 “매년 이렇게 벌통을 사서 양봉을 해야 한다면 지속 가능하겠나.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도 제각각이라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벌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 공원에서 꿀벌이 토끼풀꽃 사이를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년간 국내서 꿀벌 300억마리 사라져”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꿀벌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 국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업협력단이 공동 발표한 ‘벌의 위기와 보호 정책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겨울 국내에선 78억마리의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해 9~11월 사이엔 꿀벌 100억마리가 사라졌고, 올해 초에는 14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2년 새 사라진 꿀벌의 개체수는 300억마리가 넘는다.

꿀벌 실종은 양봉 농업만의 위기가 아니다. 인류에게도 치명적이다. 식물의 번식은 벌과 나비 등이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면서 화분을 옮기면서 이뤄진다. 꿀벌 실종은 식물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농작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린피스는 보고서에서 “화분 매개 부족으로 인한 농업 생산량 저하는 식량 위기를 일으키고, 빈부 양극화와 영양공급의 불량으로 이어져 한국 국민들의 건강과 복지 문제로 직결된다”며 “생태계 내 연쇄 붕괴 현상이 촉발되어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멸종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과수농가에서도 꿀벌 개체수 감소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화기 벌들이 바쁘게 움직여야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데, 벌들이 사라지면서 이를 대체할 작업을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가에서는 뒤영벌(화분 매개 전용벌)을 활용하거나 인공 수분을 대안으로 쓰고 있다. 뒤영벌은 공장식 대량 생산이 가능해 공급이 원활하다. 저온에도 활동성이 뛰어나고, 병해충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몸집이 꿀벌보다 비대해 꽃이나 작물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뒤영벌은 과수 농가에서만 쓰이고 있어, 야생 식물의 생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꿀벌 군집붕괴현상 관련 인포그래픽. /그래픽=손민균

◇ 기후변화에 응애 피해까지…월동벌 실종에 벌집 폐허로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인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손꼽힌다. 온난화로 꽃의 개화는 빨라지는데 꿀벌의 월동기는 크게 변화가 없다. 식물과 곤충의 바이오리듬이 엇갈리면서 정작 꿀벌이 활동을 시작한 시기에 해당 지역의 꽃이 다 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개화기가 예년보다 1~2주가량 앞당겨졌다. 이 때문에 전국 주요 지자체들이 예상 개화기에 맞춰 벚꽃 축제를 준비했지만, 꽃이 예상보다 빨리 피면서 정작 축제 당일에는 꽃이 다 져 ‘벚꽃 없는 벚꽃 축제’가 열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후변화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난화는 꿀벌의 천적인 말벌 확산이라는 추가적인 피해로 이어진다. 2006년까지만 해도 일부 남부지방에서만 서식하던 ‘등검은말벌’은 최근 서식지가 강원 북부까지 전국적으로 퍼졌다. 외래해충으로 지정된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잡아먹어 벌집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 집단에선 꿀벌에 기생하는 ‘응애’ 피해를 주목한다. 길의준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기후 요인과 농약, 바이러스, 꿀벌의 면역력 저하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최근에는 응애 피해 신고가 많다”면서 “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는 진드기로, 거머리처럼 꿀벌에 붙어 액을 빨아먹고 산다. 바이러스 등 질병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응애는 특히 월동을 하는 겨울 동안 벌집을 지켜야 할 월동벌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꿀벌은 태어나는 시기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10월 중에 태어나는 일벌은 월동을 위한 일벌로 체내 단백질이 다른 벌에 비해 풍부하다. 이 때문에 월동벌은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도 3~4개월간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응애가 월동벌의 체액과 체내 단백질을 모두 빨아먹으면서 월동벌의 겨울나기가 어려워졌다. 월동벌을 잃은 벌집은 폐허가 될 뿐이다.

26일 철원 김화농협 양곡저장창고에서 양봉농협관계자가 정상석 한국양봉농협 이사가 가져온 벌꿀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 양봉민 ‘발 동동’…정작 농식품부는 “자연 감소 수준”

양봉농가를 넘어 생태계의 위기를 예고하는 꿀벌 실종 사태이지만,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괜찮다’는 반응이다. 지금의 꿀벌 손실은 ‘자연 감소 수준’이며, 농민들의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확대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9일 보도 참고자료에서 그린피스가 보고서에서 밝힌 꿀벌 실종 사태에 대해 “매년 최소 500억마리 이상의 꿀벌이 태어났다가 죽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면서 “농촌진흥청의 표본 조사 결과에서도 월동 전 대비 월동 후 꿀벌 소실률은 17.5%로 FAO에서 발표한 자연 소실률 15%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25일 개최한 ‘꿀벌 증식 및 아카시아꿀 생산 현황’ 기자간담회에서도 “꿀벌 실종은 자연 감소 수준이며, 올해 꿀 생산은 양호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길 교수는 “예전부터 겨울철에 꿀벌 폐사가 발생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며 “정부가 제시하는 표본 검출 조사도 표준화되지 않은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뒤영벌 등 꿀벌을 대체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곤 하지만, 이 같은 꿀벌 대량 실종 사태가 위기 신호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농식품부는 또 국내 밀원(꿀의 원천) 수 대비 벌집 수가 많은 게 문제라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4월 4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양봉농가 피해 현황 관련 질의에 “현재 국내 양봉 봉군의 수는 280만개 정도 되는데, 적정선은 220만개로 보고 있다”면서 “지금은 30% 정도 오버 상태로, 밀원 수가 충분하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벌이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에는 벌꿀이 상당히 풍작이었다. 조금 과도하게 채밀 활동을 한 것”이라며 “꿀벌 자체가 면역력이 약해지고, 응애와 연계되면서 농가별로 피해가 많은 데도 있고, 방제를 잘한 농가는 피해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농민들은 정부의 반응에 답답함을 피력한다. 김선희 한국양봉협회 지회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꿀벌의 면역력 저하, 응애 발생, 농약 피해 등으로 벌꿀 생산량이 급감했는데, 정부에선 괜찮다고만 하니 갑갑하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농식품부에서 ‘꿀벌 생산 양호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던데,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조사했는지 궁금하다”며 “실무자가 윗사람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그러는 건지,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 내에서도 자신들이 발표한 통계 자료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농진청은 꿀벌 소실 관련 통계와 관련해 “벌통 내 꿀벌 개체수에 대한 기준과 봉군 소실에 대한 정의가 마련되지 않아 봉군 소실(수준)을 제시하긴 어렵다”면서 “지금까지 표준화된 기준 없이 주관적 판단으로 봉군 피해율이 조사됐다. 통계 신뢰 확보를 위해 피해 조사 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벌통 감소로 인한 농가 피해 규모 현황에 대해서도 “벌통 감소로 인한 농가 별 경제적 손실은 조사한 바 없다”며 “벌통 가격 상승으로 (벌통) 판매 농가는 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구입 농가는 비용 지출로 실질소득이 감소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