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면 앞으로는 한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정부는 기술 보유 기업가 신청하지 않아도 정부가 먼저 해당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모두 어렵게 획득한 우리 산업기술을 보호하려는 조치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3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30일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제43차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정부는 기술 보호의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외국인(이중국적자 포함)의 지배를 받는 국내 사모펀드를 ‘외국인’ 개념에 넣었다. 앞으로는 사모펀드가 국내에 설립됐어도 실제 통제권자가 외국인이라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과 M&A를 할 때 정부 심사와 산업부 장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외국 자본이 한국의 국가핵심기술을 확보하는 우회로로 국내 사모펀드를 활용하는 걸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산업기술보호법 제2조 2항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 보장 및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규정한다. 현재 한국은 30나노 이하급 D램 기술,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기술 등 70여개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또 정부는 기업이 먼저 신청하지 않아도 정부 자체 판단에 따라 특정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해당 여부를 따져보는 ‘판정 명령’ 제도를 개정안에 담았다.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는 판정 결과가 나오면 해당 기업은 무조건 그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등록해야 한다.

기술을 해외로 빼돌린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정부는 처벌 대상을 ‘목적범’에서 ‘고의범’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현행법을 바탕으로 한 대법원 판례는 누군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내용을 고의로 빼내 외국에 넘겨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을 검찰이 증거로 입증해야 해 처벌이 까다롭다.

이 밖에 개정안에는 규정을 어기고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M&A한 외국인에게 원상 복구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는 규제심사 등의 추가 행정 절차를 마치고 연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기술 패권 경쟁이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주요국은 전략물자 수출 통제는 물론 외국인의 직접투자와 자국민의 첨단기술 해외 투자까지 심사하고 있다”며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국가핵심기술 등록제를 도입해 철저한 기술 보호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