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확 불어난 태양광 발전 설비가 전력 수급 불균형에 따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리스크를 확 키웠는데도 전국 곳곳에서는 여전히 태양광 발전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에너지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력 생산지와 수요지를 연결하는 송·배전 시스템은 수년새 급증한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데, 이에 아랑곳없이 각지의 태양광 발전소는 가동에 들어가고 있어서다.

한국전력이 독점 중인 송전망 투자에 민간 자본을 끌어와 송전선로 확충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에너지 소비가 많은 지역 인근에서 중·소 규모로 전력을 생산하는 분산에너지를 서둘러 정착시키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중이던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수상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 뉴스1

◇ 과잉 생산 논란에도 태양광 투자 활발

30일 정부에 따르면 제주도는 이달 초 낸 ‘수망태양광 발전 시설 개발사업 시행 승인 신청에 따른 열람공고’를 최근 마무리하고 심사 절차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76만7000㎡ 부지에 1391억원을 들여 100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짓는 것이다. 시설 면적만 73만2400㎡인데, 이는 마라도의 2.4배다. 인근 서귀포시 표선면에서는 48.5㎿급 태양광 발전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태양광 발전 설비 구축은 제주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이달 2일 전남 고흥군은 이 지역 담수호 해창만 물 위에 떠있는 98㎿급 수상태양광 발전소의 준공을 승인했다. 태양광 패널 20만개를 이어붙여서 만든 이 발전소는 수상태양광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에 건설 중인 태안안면클린에너지 태양광 발전소는 306㎿급 용량으로, 다음 달 준공 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된다.

탈원전 정책 폐기에도 이처럼 여전히 전국 각지에 태양광 발전 설비가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 ‘탄소중립’ 목표 때문이다.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현재 7.5% 수준인 신재생 발전 비중을 2036년 30.6%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3716㎿ 규모이던 전국 태양광 발전 용량은 올해 5월 2만1953㎿로 6배 늘어난 상태다.

그래픽=손민균

◇ 태양광 속도 못 따라가는 송전망 구축

문제는 수년새 급격히 불어난 태양광 발전 설비 만큼 송전망 보강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동차 공장을 잔뜩 지어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선 정작 차가 다닐 도로는 확장하지 않은 셈이다. 송전선로 인근 주민의 극심한 반발이 지지부진한 송전망 확대의 주된 배경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제주·호남 등 주요 전력 공급지와 수도권 등 주요 수요지 사이의 수급 불균형 문제가 잦아지고 있다.

전력 시스템은 공급과 수요 중 어느 한쪽이라도 지나치게 늘면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 있다. 그간 블랙아웃 위기는 주로 폭염·강추위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이나 겨울철에 커졌는데, 전국에 태양광 발전 설비가 늘면서 최근에는 봄철에도 정전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통상 봄은 전력 수요는 적은데 반해 햇살이 좋아 태양광 발전량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는 전력 공급 과잉이 우려되면 발전소에 출력 제어를 지시한다. 초과 공급된 전기를 전력망에 그대로 흘려보내면 전력망에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어 발전소 가동을 잠시 멈추게 한다는 의미다. 태양광 설비가 많은 제주 지역의 경우 2018년 15회이던 출력 제어 횟수가 지난해 100회 이상으로 급증했다. 제주에너지공사에 따르면 오는 2034년이면 연간 출력 제어 횟수가 326회로 더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세대 베란다에 태양광 발전 패널이 설치돼 있다. / 뉴스1

◇ “송전망 투자에 민간 참여”…분산에너지 활성화도

에너지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NDC를 달성하려면 앞으로도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 발전 비중을 늘려나갈 수밖에 없는데, 송전망 확충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2030 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대폭 상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송전망 보강의 걸림돌인 주민 수용성 문제를 극복할 아이디어로 송전망 투자에 민간 자본을 끌어오는 방안을 제시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주민 설득의 핵심은 결국 보상인데, 재무 상태가 부실해진 한국전력에 넉넉한 보상금 마련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라며 “날로 심해지는 전력 수급 불균형을 해결할 거의 유일한 방법은 송전망 투자에 민간 기업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도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로 언급된다. 분산에너지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지역 인근에서 중·소 규모로 전력을 생산하는 개념이다. 산업부는 ‘제3차 지능형 전력망 기본 계획(2023~2027년)’을 통해 “현재 13.2%인 분산형 전원 비중을 향후 5년간 18.6%로 5.4%포인트(P) 키우겠다”고 했다. 이달 25일에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