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먹여 살릴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연일 확대하고 있지만, 기업은 최저한세 제도가 세금 감면 정책의 효과를 가로막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1991년 노태우 정부가 도입한 최저한세는 기업이 각종 세제 혜택을 받더라도 이익의 일정 수준 이상을 반드시 법인세로 납부하도록 정해 놓은 제도다. 과세표준 1000억원을 초과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17%의 최저한세율을 적용받는다.

정부가 첨단기술 투자에 대한 비과세·감면을 아무리 확대해도 최저한세가 존재하는 한 기업은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게 재계의 불만이다. 정부는 최저한세에 막혀 공제받지 못한 부분을 10년간 이월해 공제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올해 기업 세 부담이 늘면 그만큼 투자 여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최저한세율을 낮추거나 이월공제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 혜택을 크게 확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 “획기적 뒷받침”…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확대한 尹정부

23일 정부·재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8일 ‘디스플레이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하면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상 국가전략기술로 5개 디스플레이 핵심기술을 지정해 기업의 투자 부담을 대폭 낮췄다”고 밝혔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퀀텀닷(quantum dot·양자점), 마이크로LED(Light Emitting Diodes) 등 패널 기술 3개와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 2개가 국가전략기술 범위에 들어왔다.

지난해 처음 도입된 국가전략기술은 국가 경제‧안보 차원의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규모 세제 혜택을 주는 기술이다. 예컨대 한 대기업이 일반기술을 다루는 시설에 투자하면 세액공제율이 3%에 불과하지만,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투자하면 15%의 세액 공제를 받는다. 여기에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 10%를 더하면 대기업은 최대 25%의 세금 감면을 누린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5월 출범 직후부터 국가전략기술에 주는 세제 혜택을 강화해왔다.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을 6%에서 8%를 거쳐 15%로 확대했고, 중소기업의 경우 16%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율도 원래 4%였는데 윤 정부 들어 10%로 강화한 것이다. 반도체·이차전지·백신 등 3개였던 지원 분야도 디스플레이와 수소, 미래형 이동수단을 추가해 총 6개로 늘렸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전략기술뿐 아니라 신성장·원천기술, 일반기술 등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도 강화했다. /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 투자 심리를 끌어올리고 국가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 상향 등으로 약 3조3000억원(2024년 기준) 규모의 추가 세 부담 감소가 기대된다. 한국의 세제 지원은 주요 경쟁국 대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 법인세 2.3조원 절감 혜택 못 누리는 삼성전자

하지만 기업들은 세제 혜택 확대를 환영하면서도 정부가 최저한세 제도를 그대로 두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최저한세는 정부가 세금을 아무리 많이 깎아주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 수준이다. 현행법상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최저한세는 과세표준 100억원 이하는 10%, 100억원 초과~1000억원 이하는 12%, 1000억원 초과는 17%다. 중소기업은 일괄적으로 7%의 최저한세율을 적용받는다.

예컨대 과세표준 1조원인 반도체 대기업이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24%)을 적용받아 산출세액 약 2400억원이 나왔다고 치자. 이 회사가 시설투자로 1000억원의 세액공제를 받는다면, 내야 할 세금은 1400억원가량이 된다. 하지만 최저한세율 17% 때문에 실제로 납부해야 할 법인세는 약 1700억원이 된다. 적극적인 투자의 효과가 애초 생각보다 줄어드는 셈이다. 이해가 쉽도록 법인세와 최저한세 모두 다른 세액공제는 없고 단일세율구조라고 가정해 계산한 수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9%에서 11.1%까지 낮아질 수 있지만, 최저한세율에 걸려 연간 법인세 절감 혜택은 약 2조2800억원이 사라진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4월 7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반도체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기획재정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최저한세 17% 적용 대상 기업은 10개, 12%는 63개, 10%는 951개, 7%는 5만539개다. 이 중 17% 적용 기업은 10곳에 불과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삼성·SK·LG 등 주요 대기업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윤 정부의 조특법 개정으로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9%에서 11.1%까지 낮아질 수 있지만, 최저한세율에 걸려 연간 법인세 절감 혜택은 약 2조2800억원이 사라진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여야가 국가전략산업 등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조특법 개정안(K칩스법) 처리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전례 없이 획기적인 세제 지원책의 실효성이 국내 법인세 최저한세 제도로 인해 반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정부는 차제에 최저한세 제도를 개선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 최저한세 걸리면 연구비 줄이는 대기업…“보완책 필요”

정부도 국가전략기술 세제 혜택 확대 조치가 최저한세율과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월공제 제도가 있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저한세 적용으로 공제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음 연도로 이월해 공제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월공제 허용 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기업이 받아야 할 혜택을 못 받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만우 고려대 명예교수 연구에 따르면 대기업은 최저한세에 걸리면 인력개발비를 포함한 연구비부터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 한 남성이 서울 남산타워에서 주요 기업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듬해로 넘어간 세액공제 효과 역시 해당 연도의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월되는 만큼 미래의 세액공제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한세에 막혀 당장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으로선 그만큼 적기 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월공제 기간(10년)도 20년~무제한인 선진국과 비교해 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저한세를 적용하는 나라는 미국·벨기에·오스트리아·한국 등 8개국이다. 나머지 30개국에는 최저한세가 없다. 미국의 경우도 순이익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 기업에만 최저한세를 적용하고, 최저한세율도 15%로 한국보다 2%포인트(P) 낮다. 재계에서 “한국도 최저한세율 조정 또는 이월공제 기간 연장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만우 고려대 명예교수는 ‘세무학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기업은 최저한세에 걸리면 인력개발비를 포함한 연구비부터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세금 감면 약화를 성장을 위한 미래 투자 축소로 대응한다는 의미다. 김학수 연구위원은 “정부가 기업 투자 촉진 정책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보고 싶다면 최저한세율과 같은 충돌 지점까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