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경제 협력 관계가 농익고 있다. 새해 300억달러 규모의 ‘한국 기업 투자’를 약속한 UAE는 넉 달 만에 서울을 찾아 20억달러 투자를 우선 이행하기로 했다. 주요 ‘투자자’는 UAE 아부다비 소속 4대 국부펀드인데, 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석유를 수출해 재정이 넉넉한 UAE는 국부펀드를 통해 적극적으로 돈을 굴린다. UAE는 운용자산의 규모가 100억달러 이상인 거대 국부펀드만 7개를 가지고 있고, 총 규모로 따지면 세계 3대 국부펀드 보유국으로 꼽힌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무바달라, 아부다비투자청(ADIA), 아부다비개발지주회사(ADQ), 아부다비투자위원회(ADIC) 등은 이름이 유사해 보이지만, 각기 투자 목적이나 성향이 다르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UAE 아부다비 소속 국부펀드 4곳과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ADNOC),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마스다르(Masdar’), 상업은행 FAB(First Abu Dhabi Bank) 등 UAE 7개 기관은 지난 15~16일 한국 서울을 방문했다. 현재 총 20억달러 규모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검토가 진행 중이다. 에너지·정보통신기술·농업기술·생명공학·항공우주·K-컬처(Culture) 등 분야를 투자처로 우선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현지 시각) 스위스 다보스의 한 호텔에서 글로벌 CEO(최고경영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 앞서 칼둔 알 무바라크(Khaldoon Al Mubarak) 무바달라 투자사(Mubadala Investment Company) CEO 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대화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 “무바달라·ADIA·ADQ·ADIC” 생소한 UAE 국부펀드

UAE 내에는 국부펀드가 다수 운영되고 있다. 우리로 치면 경상도·전라도처럼 ‘에미리트’(Emirate)란 단위로 나라의 영역이 7개로 구분돼 있는데, 국부펀드들도 소속을 둔 에미리트가 각각 존재한다. 이번에 우리나라를 찾은 4곳의 국부펀드는 모두 아부다비 에미리트 소속이다. 아부다비는 UAE 내에서 영토 규모와 경제력이 가장 큰 곳으로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큰 규모의 국부펀드는 ADIA다. 지난해 기준 자산이 8280억달러(약 1092조원)에 이르며, 아부다비 내 1위, 세계 3위 국부펀드다. 100% 해외 투자로 운용되며, 전반적으로 안전 투자를 선호한다는 특징이 있다. ADIA는 2014년 8월 서울 회현동 남산 스테이트타워를 5030억원에 인수했다가 2019년 5800억원에 매각했던 것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다.

또 다른 대표 투자자인 무바달라는 현재 우리 정부와 가장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는 국부펀드이기도 하다. 기재부 내 UAE와의 경제협력 업무를 전담하는 금융투자지원단과 산업은행이 이곳과 주로 협력하고 있으며, 무바달라 내엔 올해 ‘한국투자전담팀’이 생기기도 했다. 무바달라는 자산 2430억달러(약 321조원) 규모로, 아부다비 내 2위, 세계 12위 규모를 자랑한다.

아부다비 스카이라인 전경. /로이터

무바달라는 석유 중심인 UAE 산업의 다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스타트업·첨단기술 등 분야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지분 투자에 관심이 많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넥센타이어, GS그룹과의 인연이 있다. 무바달라는 2017년 넥센타이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 적 있고, GS그룹과 컨소시엄 형태로 연계해 지난해 7월 휴젤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 밖에 ADQ는 에너지·전력·수도, 보건·제약, 교통·운수, 식품·농업, 금융·부동산,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관심을 둔 1570억달러(약 207조원) 규모의 아부다비 3위 국부펀드다. 튀르키예나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지역 투자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DIC는 주로 아부다비 경제에 투자하는 데 집중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국부펀드의 (왼쪽부터) 자산 규모, 투자 규모, 투자 건수 추이. 노란색은 중동의 비중을 나타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 “對아시아 투자 커진 중동 국부펀드, 협력 전략 짤 적기”

이번 UAE 국부펀드들과의 협업을 계기 삼아, 중동 국부펀드를 겨냥한 우리나라의 협력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나온다. 더욱이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 중동 국부펀드의 자산·투자 규모가 근래 증가한 만큼, 이들의 커지는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국부펀드 연구기관 SWFI(Sovereign Wealth Fund Institute)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149개 국부펀드 중 중동 지역의 국부펀드가 27개에 달했다. 또 자산 규모 기준 세계 20대 국부펀드 중 상위 10개가 중동 소속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달 발간한 ‘중동 주요 국부펀드의 최근 투자 동향 시사점’ 보고서는 “우리 기업과 국부펀드·인프라펀드가 중동 국부펀드와 함께 현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수소 관련 인프라 투자에 공동 참여하거나 제3국 공동 진출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을 통한 자국민 일자리 창출, 인적자원개발과 연계한 상생 모델을 제시한다면 국부펀드 투자 자금 유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