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올해 1분기(1~3월) 4.5% 성장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지만, 한국의 수출 부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한국 경제는 중국에 중간재를 대거 수출해 큰 재미를 봤다. 중국 경제가 활기를 보일수록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도 살아나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연결고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기대했던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미미하다.

단기적인 이유는 중국의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 수요가 덜 살아나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주요 첨단산업을 내재화해 한국산 중간재 의존도에서 벗어나려는 중국 정부의 오랜 시도가 점점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이 이런 구조적 변화를 이해하고 교역 네트워크 다변화 등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3.0%에서 올해 5.5%로 개선될 전망이다. 5월 11일 중국 베이징 중심업무지구에 있는 건물 앞에서 한 시민이 운동을 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 반도체 부진에…中 리오프닝 혜택 못보는 韓

1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리오프닝과 중국 정부의 내수 활성화 정책, 2022년의 낮은 성장률(3.0%)에 따른 기저효과 등으로 올해 연간 5.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종전 전망치보다 0.7%포인트(P) 상향 조정된 수치다. 김흥종 KIEP 원장은 “리오프닝 이후 생산·소비를 중심으로 경제가 회복되며 올해 1분기 중국 경제는 4.5% 성장했다”고 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살아나면 한국에도 호재여야 한다. 하지만 훈풍은 아직 불어오지 않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32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7%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중 무역수지는 10억5000만달러 적자다. 이 추세대로면 5월 말 기준 12개월 연속 대중 수출 감소와 8개월 연속 대중 무역 적자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예상보다 미미한 이유는 뭘까. 대한상공회의소는 중국 리오프닝으로 한국 경제가 긍정적인 효과를 얻으려면 ▲부동산 시장 회복 ▲산업생산의 본격 재가동 ▲소비심리 개선 ▲반도체 등 IT 부문 수요 회복 등 4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대한상의는 “반도체 가격과 IT 제품 재고가 여전히 부진하다. IT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리오프닝 효과는 약화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중국 IT 산업의 재고는 2019년 말 대비 60% 이상 증가한 상태다. 재고가 많으면 한국에 보내는 주문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4.2% 감소한 496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 비중이 큰 중국(-26.5%)과 아세안(-26.3%) 수출이 크게 위축했다. 덩달아 반도체(-41%)·디스플레이(-29.3%) 등 IT 분야 수출 감소 폭도 두드러졌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2013년 628억달러를 정점으로 계속 줄고 있다. 5월 9일 중국 동부 장쑤성 롄윈강 항구에서 대형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 AFP 연합뉴스

◇ “탈한국산” 첨단산업 내재화 속도 내는 중국

문제는 앞으로 중국의 IT 수요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 우리 수출에 도움을 줄 뿐, 중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간 중국 정부는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내재화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쌍순환’이란 불리는 내수 강화 정책을 앞세워 수입에 의존해온 여러 중간재를 자국산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출 정책을 구사해온 한국에는 엄청난 악재다.

중국 정부의 내재화 노력은 이미 ‘한국의 대중 무역 흑자 축소’라는 형태로 서서히 결실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 흑자는 2013년 628억달러를 정점으로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양국 무역 규모가 사상 처음 3000억달러를 돌파한 2021년에도 무역 흑자는 2013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243억달러에 머물렀고, 작년에는 중국 경기 둔화 이슈까지 맞물리면서 12억3500만달러로 급전직하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중 수출 제품의 경쟁력 지표(RCA)는 1990년 3.23에서 2020년 1.49로 확 쪼그라들었다. 중국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 26년 동안 한국은 대중 교역에서 흑자를 가장 많이 내는 나라 2위(1위는 대만) 자리를 지켰으나 지난해 대만·호주·브라질에 이은 4위로 주저앉았다. 한국 경제가 대중 수출로 잘 먹고 잘 살던 시절이 끝나간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는 글로벌 경기 하강과 에너지 수입 증가 등의 이슈까지 한국 경제를 덮쳤다. 결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였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는 총 477억8500만달러로, 기존 연간 최대 적자인 1996년의 206억달러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국 내수 영향력이 금융위기 이후 축소되고 있어 앞으로 중국 경기가 회복돼도 대중 무역수지가 흑자 폭을 빠르게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편집부

◇ “핵심 소재 수입 공급망 안정화 꾀해야”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시진핑 집권 3기 진입 등을 거치며 중국 경제가 구조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면서 본격화한 미·중 분쟁은 이후 공급망, 첨단기술, 국제안보 지형 등을 둘러싼 전방위적 갈등으로 고조되고 있다.

KIEP는 이미 많은 중국 진출 기업이 이전이나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베트남·인도·멕시코 등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흥종 원장은 “이런 변화는 중국을 내수 중심으로 변화하게 한다”며 “또 자체 기술 개발, 산업 육성책 등과 맞물려 중국 경제 성장률이 회복되더라도 글로벌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낮아지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2023년을 ‘경제 발전의 전략적 기회와 리스크가 공존하면서 불확실성 요소가 증가하는 시기’로 정의하고, 이에 대응해 내수경기 회복과 자국 경쟁력 제고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둔 상태다. 중국 정부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과학기술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반도체·항공우주·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 공략을 위한 ‘신형거국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이런 변화를 잘 이해하고 교역 네트워크 다변화를 부지런히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지상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날로 악화하는 대중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면 차세대 수출 신산업과 관련한 핵심 소재의 안정적인 수입 공급망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