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전기요금 결정을 정치적으로 해선 안 된다”며 독립적인 요금 결정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필요하면 입법 조치까지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경기 둔화에 따른 민생 부담 등을 이유로 미뤄지고 있는 올해 2분기(4~6월) 전기요금 조정과 관련해선 “조만간 인상 폭을 결정할 것”이라며 “5월을 넘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 장관은 요금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정치권에서 요구한 한국전력의 고강도 자구계획과 정승일 한전 사장의 거취 문제는 별개라고 했다.

사진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4월 19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지방 에너지효율 협의회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이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과 만나 윤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은 소감과 산업부의 정책 성과, 향후 과제 등을 언급했다. 전기요금 조정이 임박한 만큼 주로 해당 현안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이 장관은 전기요금 인상 시점과 관련해 “5월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먼저 많이 올리고 나중 적게 올리는 방법과 단계적으로 천천히 올리는 방법 등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초 정부는 2분기 전기요금을 3월 말 결정한 다음 4월부터 곧장 적용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당정 협의 과정에서 최종 결정이 미뤄졌다. 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과 그에 따른 민생 경제 고통 가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서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는 한전의 자구책 마련을 요금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 상태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달 2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졸속 탈원전으로 (한전이) 26조원이나 손해를 볼 때 한전 사장은 뭘 했느냐”며 “(자구책 마련 등) 노력도 못 한다면 자리를 내놓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현재 여당은 정승일 한전 사장의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한전은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불필요한 자산 매각과 불요불급한 사업 정리 등의 개선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한전 사장의 거취 문제와 한전의 자구 노력은 별개라고 생각한다”며 말을 아꼈다.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당정은 현재 전기요금 인상안을 두고 막판 조율을 벌이고 있다. 킬로와트시(㎾h)당 10원 미만의 소폭 인상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력 업계는 당·정이 ㎾h당 7~9원 선에서 요금 인상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 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도시 지역 4인 가구의 6월 평균 전기 사용량은 307㎾h다.

이를 토대로 월평균 전기요금을 계산하면 4만8570원이다. 만약 이번에 전기요금이 7원 인상되면 4인 가구 부담액은 기존보다 2440원 오른 5만1010원이 된다. 정부가 지난 1분기처럼 13원 인상하면 4인 가구가 지불해야 할 평균 요금은 4530원 오른 5만3100원이 된다. 지난 1분기에 정부는 전기요금을 ㎾h당 13.1원 올린 바 있다.

이 장관은 전기요금 결정 시스템의 정치화에 대해서는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에너지 요금은 경제적 변수가 있기 때문에 정치화해선 안 된다”며 “전기·가스요금 결정 체계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작년에 이미 시작했고 이르면 5~6월에 전기요금, 9~10월에 가스요금 관련 용역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이 장관은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안을 만들고 필요하면 입법 절차까지 밟겠다는 뜻을 전했다.

현재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전이 조정안을 만들어 산업부에 제출하면 전기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산업부는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해당 사안을 협의해야 한다. 여기에 최근 들어서는 여당의 입김도 강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전기위원회는 총 9명의 위원 중 상임위원은 산업부 에너지산업실장 1명뿐이다. 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위원 8명은 모두 비상임위원이다. 조직 자체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의미다. 이 장관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연구용역은 아니다”라며 “요금 결정 체계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