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셋집에 대한 경·공매가 진행되고,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는 등 여섯 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전셋집에 대한 경·공매 정지와 우선매수권 등의 특례를 받게 된다. 세금 징수 권리를 임대인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에 고르게 배분하는 ‘조세채권 안분’이 실행된다. 생계가 곤란해진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월 62만원의 생계비가 지급된다. 다만 전세보증금을 공공이 우선 보상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특별법안에 담지 않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명확히 제시한 정부

27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될 경우 우선매수권 등의 특례를 부여한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희망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해당 임차 주택을 매입한 후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정부는 특별법에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을 담았다.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 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깡통전세’의 경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피해자 인정 신청은 임차인이 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부처 내에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를 설치하고, 시·도는 신청을 받아 기초조사를 하는 등의 역할을 맡아 전세사기 지원 대상을 확인한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에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지 여부를 판단해 피해자 지위를 최종 결정한다. 지자체 기초 조사와 병행해 위원회 직권조사도 가능하다.

특별법은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통상 임대차 계약 기간이 2년인 것을 고려한 조치다. 특별법은 법 공포 후 즉시 시행된다. 일부 규정의 경우 1개월 내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즉시 제정안을 발의하고 국회와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 /국토교통부 제공

◇ 임차 주택 낙찰받도록 특례 지원… 공공 매입은 ‘배제’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임차 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는 특례가 지원된다. 특히, 이미 경·공매가 완료된 임차인이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될 경우 공공임대로 입주하고, 긴급복지와 신용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해당 전셋집의 경·공매를 유예하거나 정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경매를 유예·정지하는 조치는 경매 신청자만 가능해 금융당국의 요청과 금융권의 자율적 협조에 달려 있다. 앞으로는 피해 임차인이 직접 경매 유예·정지 신청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도 법적 근거에 따라 통해 경·공매 유예 이행력을 높일 계획이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 중인 주택이 경·공매로 넘어갈 경우 피해 임차인이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2015년 8월 이전까지 임대아파트가 부도로 경매되는 경우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사례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임차 주택에 대한 경매가 진행될 때 피해 임차인은 다른 채권자 등과 마찬가지로 최고가로 입찰하는 경우에만 낙찰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우선 매수 신고할 경우 최고가 낙찰액과 같은 가격으로 낙찰받을 수 있고, 임차인이 희망할 경우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할 수 있게 된다.

집주인이 수십억원의 세금을 체납해 경매로 낙찰받기 어려웠던 임차인을 구제하기 위한 ‘조세채권 안분’ 방안도 담겼다. 임대인의 전체 세금 체납액을 개인 주택별로 나누고, 주택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조세 당국이 해당 주택의 세금 체납액만 분리해 환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임대인 소유 주택 1000채가 각각 경매로 넘어갈 경우 현재는 모든 주택마다 선순위 조세채권 100억원이 반영된다. 우선 경매되는 100채까지는 낙찰가 전액을 징수하고, 101번째부터는 조세채권 적용이 풀리는 구조였다. 앞으로는 모든 주택에 선순위 조세채권을 배분한다. 경매되는 주택별로 낙찰될 경우 주택 1000채에 1000만원씩 징수하는 방식이다. 피해 임차인의 경·공매 시 배당금이 늘어날 전망이다.

전세보증금을 공공이 우선 보상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특별법에서 빠졌다. 야당 측은 ‘선(先) 보상 후(後) 구상권 청구’ 방안을 주장해왔다. 공공이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을 통해 우선 보상해주고, 추후 수사 과정에서 임대인의 재산이 발견되면 구상권을 청구하자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만큼 특별법에서 배제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 시내 한 아파트에 전세사기 피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 피해자에겐 신혼부부와 동일한 대출 지원

전세사기 피해자가 해당 주택을 경·공매로 낙찰받을 경우 금융·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 주택을 경락받거나 신규 주택을 구입할 경우 금융지원이 강화된 정책모기지를 마련한다. 주택기금 구입자금대출인 디딤돌 대출 시 최우대요건인 신혼부부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경우 4억원까지 금리 1.85~2.7%를 적용받는다. 거치기간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금리 인하, 개선된 상환조건 등으로 제공된다.

민간금융사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도 완화한다. 대출액 4억원 한도 내에서 LTV는 경락 낙찰가의 100%를 적용한다.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비규제 지역의 경우 70%에서 80%로 상향한다. DSR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은 배제한다. 경·공매 이후 전세대출 잔여 채무에 대한 분할 상환은 최장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공매로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뒷받침되는 금융‧세제 지원책. /국토교통부 제공

기존 임차 주택을 낙찰받는 경우 취득세는 200만원 한도 내에서 면제된다. 등록면허세도 면제되고, 3년간 재산세가 감면된다. 단 재산세는 전용면적 60㎡ 이하의 경우 50%, 전용면적 60㎡ 초과의 경우 25%를 적용할 방침이다.

기존 주택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하지만, 경매를 통해 낙찰받고 싶지 않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 LH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제공한다. 전세보증금에 대한 공공의 직접적인 지원이나 보전은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소득이나 자산요건에 상관없이 매입임대 입주 자격을 받게 된다. 낙찰 가격이나 주택 상태 등에 따라 LH가 임차 주택을 매입하지 못할 경우, 인근 지역의 유사 공공임대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재난·재해 등 위기 상황 때 지원하는 긴급복지 지원제도를 ‘전세사기 피해자’ 가구에도 적용한다. 기존 긴급복지 요건을 충족할 경우 생계비 월 62만원, 300만원 이내의 의료비, 대도시 거주 기준 월 40만원의 주거비가 지원된다. 다만 1인 가구 기준 월 소득 156만원, 금융 재산 600만원 이하, 대도시 거주 기준 3억1000만원 이하의 재산 보유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