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국내 대형 게임사 넷마블은 모바일 게임 신작 ‘리니지2‘을 구글 플레이와 원스토어에 동시 출시해 매출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구글은 넷마블에 구글 플레이 1면 노출(피처링)과 해외 진출, 마케팅 지원 등을 제안하면서 리니지2를 구글 플레이에만 독점 출시하라고 요구했다. 구글은 해외 진출을 확대하려는 넷마블에 글로벌 시장에서 구글의 지위를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넷마블은 2016년 말 리니지2를 구글 플레이에만 독점 출시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모바일 게임사의 신작을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에만 출시하도록 한 구글이 한국 정부로부터 421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독과점 사업자인 구글이 경쟁 앱 마켓인 원스토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을 제한했고, 결과적으로 앱 마켓과 모바일 게임의 혁신과 소비자 후생이 저해됐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사진은 구글 로고 뒤로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 / AFP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적 시장 지위를 활용해 모바일 게임사의 원스토어 게임 출시를 막은 구글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21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앱 마켓은 앱 개발자와 소비자 간 앱 거래를 중개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안드로이드 부문의 대표적 앱 마켓은 구글이 운영하는 ‘구글 플레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네이버가 만든 ‘원스토어’다. 구글 플레이와 원스토어 모두 국내 매출의 90% 이상을 게임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두 플랫폼의 점유율 격차는 매우 크다. 특히 구글의 시장 지배력 남용 시기가 포함된 2014~2019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안드로이드 앱 마켓 시장에서 구글 플레이 점유율은 95~99%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구글 플레이의 한국 시장 점유율도 80~95%에 이르렀다.

공정위는 구글이 이런 압도적 점유율을 앞세워 국내 주요 게임사에 구글 플레이 독점 출시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게임사에 구글 플레이 피처링과 해외 진출 지원 등을 독점 출시 조건으로 내걸었다. 피처링은 구글 플레이 앱 첫 화면 최상단 배너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게임을 노출해주는 것이다. 피처링은 구글이 게임사로부터 마케팅 비용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유성욱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앱 마켓에 매년 수십만개의 게임이 출시되는 상황에서 구글의 피처링은 게임을 소비자에게 노출시키고, 다운로드와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국내 모바일 게임사들도 해외 진출에 성공하려면 구글의 해외 피처링 같은 지원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고 했다.

구글 내부 이메일을 보면 구글 직원들도 피처링을 ‘구글 팀이 게임사를 관리할 수 있는 힘(power to manage partners)’으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 직원의 업무 메모에선 “(원스토어를) 마이너 루저 리그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사건 행위 기간 구글 플레이와 원스토어의 시장 점유율 추이(소비자 지출 금액 기준, 축 생략) /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구글이 불공정 행위를 원스토어가 출범한 2016년 6월부터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2018년 4월까지 지속했다고 전했다. 넷마블·넥슨·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뿐 아니라 중소 게임사까지 포함해 모바일 게임 시장 전체에 대해 반(反)경쟁 행위를 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구글은 리니지2뿐 아니라 리니지M, 메이플스토리M, 뮤오리진2 등의 대형 게임을 구글 플레이에 독점 유치했다.

구글의 갑(甲)질에 후발주자인 원스토어는 신규 게임을 정상적으로 유치하지 못했다. 공정위는 이 결과가 원스토어 매출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플랫폼으로서 원스토어의 가치도 떨어뜨렸다고 했다. 반대로 구글은 앱 마켓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국내 앱 마켓 시장에서 구글 점유율은 2016년 80∼85%에서 2018년 90∼95%로 높아졌지만, 원스토어의 점유율은 15∼20%에서 5∼10%로 낮아졌다. 게임 관련 유료 구매자 수도 구글 플레이는 약 30% 늘고 원스토어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이번 사건 관련 구글의 매출액은 약 1조8000억원이다.

이번 제재 결정에 대해 공정위는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의 일환으로 앱 마켓 시장의 공정한 경쟁 여건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앱 마켓 시장 독점화는 연관된 모바일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 시장의 경쟁을 회복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유 국장은 “앱 마켓 관련해 구글이 반경쟁적 행위를 한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최초 사례인 것으로 안다”며 “다른 나라에는 구글과 유효하게 경쟁할 수 있는 앱 마켓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원스토어가) 등장했기 때문에 굉장한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시장을 선점한 플랫폼 사업자의 반경쟁적 행위에 대해 국내·외 기업 간 차별 없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