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관련 금융이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1월 3일 신년사
“미분양 주택이 늘면 금융기관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건설사의 부실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홍경식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 3월 20일 국회 세미나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국내 건설사와 제2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부실화할 위험이 크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촉발한 은행 위기의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가 더 악화될 경우 사업이 중단되는 PF 사업장이 늘면서 관련 건설사와 금융사가 줄도산할 수 있어서다.

한국은행도 부동산PF 부실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건설사, 금융사 등이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부동산PF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PF 위험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연달아 내는 등 경고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모습. 2023.1.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 “부동산 경기 더 나빠지면 제2금융권 타격 불가피”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금융 익스포저(exposure·위험노출액)는 2696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5.9% 수준이다. 부동산금융 위험노출액이 경제 규모를 뛰어넘었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부동산PF 위험노출액은 163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제2금융권의 부동산PF 위험노출액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해 금융시장 불안의 ‘뇌관’으로 부상한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보험·증권·여신전문금융(카드·캐피털사)·저축은행·상호금융 등 비은행권 금융사의 부동산PF 위험노출액은 115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70%에 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저축은행, 여전사 등은 최근 몇 년 간 수익성 제고를 위해 PF를 포함한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은행권의 PF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어 부실 위험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증권사의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3.7%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 8.2%로 큰 폭 올랐다. 여신전문금융사는 같은 기간 0.5%에서 1.1%로, 저축은행은 1.2%에서 2.4%로, 보험사는 0.1%에서 0.4%로 각각 상승했다.

홍경식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은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은행권은 자산규모가 크기 때문에 우려되지 않지만, 부동산 PF 익스포저가 큰 비은행 금융기관은 부동산 시장 부진이 악화될수록 자본적정성과 유동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분양주택이 늘어나는 등 부동산 경기가 부진한데, 집값 하락과 거래 위축이 더 심화돼 건설사의 부동산PF 우발채무가 현실화될 경우 자금을 공급한 제2금융권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부실 건설사·금융기관 구조조정 속도 내야”

물가 안정이 최우선 목표인 한국은행이 부동산PF 부실 위험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부동산 시장에서 시작된 문제가 금융안정을 저해하고, 이는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그간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관련 금융시장의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부동산 부문 리스크를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로 지목했다. 기준금리 결정을 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소속 위원 중 한 명은 “부동산 관련 업종 대출의 연체가 늘고 있는 가운데 주택 가격의 급격한 조정이 가세하는 경우 신용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도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평균 공실률이 지난해 말 20% 수준으로 뛰었는데, 대출금의 70%가 중소형 지방 은행에서 조달된 점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은 최근 새마을금고를 포함한 저축은행 등의 부동산PF 연체율 상승 우려에 대해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은행과 경제학계는 부동산PF 부실화가 금융시스템을 뒤흔드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부실 우려가 큰 PF 사업장부터 정리하는 등 ‘옥석 가리기’에 미리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사업장에는 자금을 공급하되 부실 사업장은 신속한 정리를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자금을 공급해도 소용이 없는 사업장부터 정리하고, 부실 건설사와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돌입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하강에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부동산PF 부실 위험이 커졌는데, 문제는 그간 신용도가 낮거나 규모가 작은 금융기관들이 부동산PF 투자를 많이 늘렸다는 것”이라면서 “금융감독 차원에서 한국은행이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