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발표가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 국채의 편입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WGBI 등재 여부는 매해 3·9월 두 차례 공표된다. 정부와 시장은 이번보단 ‘9월 편입’이 현실성 측면에서도, 효과 측면에서도 더욱 나은 시나리오라고 바라보고 있다. 금리와 환율이 불안정한 상황인데다,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 충격을 줄여줄 도구로 활용하는 게 좋다는 이유에서다.

WGBI는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로, 미국·영국 등 23개 주요국 국채들이 편입돼 있다. 추종 자금은 2조5000억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한국이 WGBI에 편입하면 한국 국채의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WGBI를 추종하는 외국계 투자자금이 유입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그 규모를 약 50조~60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편입 시 WGBI 내 한국 국채의 비중은 2.3% 정도로 9번째로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글로벌 주식시장 전망 문서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 정부 안팎 “3월 기대 안 해, 9월 편입 현실적”

2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 러셀(FTSE Russell)은 오는 31일 WGBI 정식 편입 국가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WGBI 관찰대상국(Watch List)에 등재된 뒤 최종 편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이번보다는 다음 발표일인 올해 9월 편입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WGBI 최종 편입 여부를 결정하는 두 축은 국내 국채시장 규모 등 ‘정량적 요소’와 대상국의 거시경제, 외환시장 및 채권시장 구조, 글로벌 예탁·보관기관 연계성 측면에서의 접근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시장 접근성 요소’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기준 국고채 발행잔액 965조1000억원을 기록해, 500억달러(약 64조원·신용등급 S&P 기준 A-) 이상 등 정량적 기준을 이미 충족했다. 관건은 시장 접근성 판단인데, 올해 초 외국인의 국채 매입 이자·양도 소득 비과세 관련 개정을 완료했고, 현재 ▲거래시간 연장과 역내 외환시장 해외 금융사 참여 등 외환시장 구조 개선(내년 7월부터 시행) ▲유로클리어·예탁결제원 국채통합계좌 개통(상반기 중 목표) ▲외국인투자자 등록제 폐지(3·4분기 중 시행 목표) 등의 계획이 남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찰대상국 등재 후 최종 편입까지 여타 주요국도 통상 2년이 소요됐다”면서 “작년 9월 워치리스트에 오른 우리나라는 이마저도 매우 빠른 속도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FTSE '시장 접근성' 분류 체계 상세 기준.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 널뛰는 채권·환율… ‘WGBI 카드’ 빛 못보고 소진될수도

9월 편입론이 우세하게 떠오르는 데는 제반여건 마련 등 현실적인 이유도 있으나, 현재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정부와 시장이 더욱 선호하는 시나리오여서기도 하다.

WGBI 정식 편입으로 가장 기대되는 효과는 외국인의 국고채 투자 자금 유입이다. 그러나 변동성이 큰 장세에선 이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금융위기 우려와 피봇(pivot·정책 전환) 기대감, 그리고 최근 SVB(실리콘밸리은행)·CS(크레디트스위스) 사태까지 겹치며 채권 금리는 널뛰기를 반복하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가격 변동성이 워낙 큰 시기에서의 외자 유입은 되레 상당한 불안·충격 요인이 될수도 있다”며 “일방향으로 금리가 오르는 채권 약세 등의 상황이라면 외자 유치를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해 불안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라고 했다.

외국인의 채권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도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환율 역시도 가늠할 수 없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SVB 파산 사태의 여진으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131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상 결정이 이뤄진 지난 23일엔 하루 만에 30원 가까이 급락해 1270원대까지 내려왔다.

윤 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외자가 들어오면 불필요하게 원화 절상 압력을 높일 수도 있다”면서 “변동성은 어느 방향이든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높은 변동성 국면에서 WGBI 편입이라는 ‘카드’를 쓸 데 없이 소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과거 우리 정부가 2010년대 WGBI 관찰대상국에 들어가고도 돌연 정식 편입을 포기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은 부동산 버블 우려와 대규모 무역흑자 등으로 위안화 절상 압박이 지속됐는데, 이 영향으로 우리 원화까지 절상 압력이 고조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걸 굳이 지금 하는 것이 맞느냐’는 여론이 기재부 내부에서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부동산중개업소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 ‘세수 구멍’ 논란에 커지는 추경 노이즈도 고려해야

시장에선 추경 변수까지도 고려해 9월 편입론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최근 다수의 증권사 리포트에선 WGBI 편입에 대해 전망하며 추경 이슈를 거론하고 있다. 시장에선 아직 추경을 예단할 시점은 아니긴 하나, 경기 부진이나 부동산 구조조정에 따라 불거질 수 있는 위험성 등을 따졌을 때 “2분기 말부터 ‘추경 노이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엔 세수 부족 우려가 부각되며 추경에 대한 목소리를 키우는 모양새다. 올해 법인세, 부동산 거래세 등 상당 세목이 정부 계획에 못 미치는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올해 1월 국세 수입 진도율은 10.7%로 18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세수 부족분 보전에 더해 경기 침체 상황을 감안할 때 하반기엔 추경이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시장은 하반기 추경에 따른 시장의 충격을 일부 상쇄할 수 있는 재료로도 WGBI 편입을 바라보고 있다. 추경 편성으로 정부가 적자국채 발행에 나서게 되면, 채권시장에서의 수급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윤 위원은 “채권시장의 수급 여건을 보조할 수 있는 수단으로 WGBI 편입이 9월 정도 실시되는 것이 금융시장 안전판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일련의 전반적인 흐름만 놓고 보면 3월보다는 9월까지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