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여진이 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310원대로 올라섰다. 은행권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우려에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달러화 매수 심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위안화 약세도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9원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 1310.1원에 마감했다. 이날 0.2원 내린 1302원에 출발한 환율은 장 초반 1300원 밑으로 떨어졌다가 장중 상승 전환해 1310원을 돌파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다가 급등한 이유는 SVB 사태가 촉발한 은행권 유동성 위기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전날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가 유동성 위기를 맞은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를 30억스위스프랑(약 4조2000억원)에 전격 인수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증시는 우려하던 CS발(發) ‘블랙먼데이’ 사태는 모면했다.

여기에 미국, 유럽, 일본,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 주요 6개국 중앙은행이 달러 유동성 공급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조치를 발표했다. 이들 중앙은행은 19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내고 7일 만기 스와프의 운용 빈도를 ‘주’ 단위에서 ‘일’ 단위로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UBS의 CS 인수와 중앙은행의 달러 유동성 공급 조치 소식에 은행권 위기 관련 우려가 진정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하락 출발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0시쯤 중국 중앙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하면서 위안화가 약세를 보였다. 원화도 위안화와 연동되어 움직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장 중 한때 1313.5원까지 치솟았다.

금융시스템 붕괴에 대한 공포감이 시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도 환율에 영향을 미쳤다. SVB 사태의 후폭풍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이 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자극하면서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날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2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화 선호 현상도 나타났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 거래일보다 0.14% 오른 103.502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