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1일 성남시청 농협은행에서 관계자들이 성남시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을 검수하고 있는 모습. /뉴스1

2018년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에 나서면서 빠르게 확산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의 유효기간이 올해부터 도래하면서 미사용금액에 대한 처리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에 배포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사업 종합지침’에서 “세외수입으로 자치단체의 재정으로 귀속하고, 차년도 상품권 발행사업에 활용하라”는 내용을 하달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지역화폐를 구입한 시민들에게 낙전 발생 사실을 알리는 절차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각 지자체에서 발행한 상품권 규모와 집행 내역과 잔액 등 관리 실태에 대한 중앙 차원의 관리도 전무했다. 연간 10조원 이상의 지역화폐가 발행되고 있음에도 ‘깜깜이’로 운영·관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화폐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유가증권의 형태를 말한다. 법에서는 화폐를 ‘원화’로만 지정하고 있어, 법적 명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다. 일정 금액의 상품권을 구매할 때 10% 등 일정 수준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거나, 사용 금액의 일부를 되돌려 주는 ‘페이백’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매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현행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역화폐의 유효기간은 ‘발행일로부터 5년’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해당 조항을 근거로 지역화폐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잡고 있다. 문제는 올해부터 각 지자체가 발행한 지역화폐의 유효기간이 도래하면서, 미사용 금액에 대한 처리 문제가 숙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각 지자체에선 시민들이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도록 캠페인 등을 통해 사용을 독려할 방침이지만, 정확한 발행 금액과 미사용 금액을 파악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2018년 9월부터 지역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한 군산시청의 관계자는 “유효기간 도래를 앞두고 낙전, 즉 미사용금액에 대한 처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2006년부터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2018년부터 중앙정부의 재정 보조를 받기 시작한 거제시청의 관계자는 “시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5년이 지난 지역화폐도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시의 방침”이라면서 “미사용 금액을 따로 지자체 수입으로 잡지 않고, 일단은 지역화폐 전용 계좌에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2023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사업 종합지침'에서 유효기간이 지나 낙전이 발생한 지역화폐에 대해 지자체의 재정으로 귀속하라는 지침을 지자체에 하달했다. 사진은 지침 문건의 해당 문구. /윤희훈 기자

지자체들의 고심이 커지는 가운데, 행안부는 각 지자체에 “운영자금 중 이자수입·낙전은 관련 근거를 조례에 규정하여 자치단체의 재정으로 귀속하며(세외수입), 차년도 상품권 발행사업에 활용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조례에 담을 예시 문구도 포함했다.

행안부는 관련 문구가 담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사업 종합지침’을 매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왔으나, 올해는 비공개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들어가 있어, 공개하는 게 사업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올해는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행안부의 방침에 대해 국민 중심이 아닌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낸 돈을 일방적으로 지자체 소득으로 잡아도 된다고 지침을 하달한 것은 너무나도 행정편의적인 접근”이라며 “시민 입장에선 사용하지 못한 상품권을 몰수당했다고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재정이 대거 들어가는데 중앙에서의 관리가 부실한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역화폐 사업에는 올해 3525억원이 배정됐다. 당초 정부는 지자체간 차별을 유도하고, 경제적으로 분리시키는 지역화폐 사업에 중앙정부가 재정을 보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보고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하지만 지역화폐 사업을 경기지사 시절 성과로 여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력한 요구에 2022년도 예산의 절반 수준을 배정했다.

문제는 중앙에서 재정은 나갔지만, 나간 재정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지역사랑상품권법은 “지자체장은 상품권운영자금의 보유·관리 현황을 해당 지자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야 한다”면서 “행안부장관 및 지자체장은 상품권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이용 편의를 개선하기 위해 전산관리시스템 구축 등에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지자체가 자금 보유·관리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가 산발적으로 발행을 하고, 각각 관리를 하다보니 전체 현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담당부처인 행안부에서 전국 지역화폐 현황에 대한 파악이 안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 경제를 파편화시키고, 장기적 관점에서 화폐 가치를 하락시켜 물가 상승 우려가 있는 지역화폐 사업에 중앙정부가 재정을 보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면서 “지역화폐를 많이 사용하는, 즉 소비력이 있는 세대에 세금 지원 혜택이 몰리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