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의무매입제’에 대해 학계·현장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외국에서 도입했다 모두 실패한 정책이며, 농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무매입제가 시행되면 농민들이 쌀의 품질보다는 ‘생산량’에만 몰두하도록 해 국산 쌀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고, 막대한 재정 손실을 야기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에서 농부가 콤바인 기계를 이용해 벼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8일 조선비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가가 의무적으로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하면 농민들은 굳이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하려고 하기보다는 많은 양을 생산하려고 할 것”이라며 “다른 작물을 농사하지도 않을 것이고, 남는 쌀은 결국 폐기하게 돼 실질적인 곡물 자급률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설계한 양곡법의 구조가 통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며, 입법되더라도 실제로 정부가 의무 매입을 집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은 현재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동기 대비 5% 이상 내려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을 3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민주당이 제시한 ‘3%·5%’ 룰은 실제로 시행하기 어렵다”라며 “예상 수요량이 모두 통계를 기반으로 추산한 결과인데, 정확하게 ‘3%를 초과했다’고 짚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지역마다 산지 쌀 가격이 다른데, 쌀 가격 하락 기준의 지역과 시점을 짚는 것도 문제”라며 “산지별로 대응한다면 ‘농농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쌀값 안정을 위한 의무매입인데, 되려 쌀값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초과생산량을 모두 격리하면 일시적으로는 가격지지가 될 수 있지만, 농가에 쌀 생산확대의 유인으로 작용해 공급과잉구조가 심화하고 가격 하락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농업 구조의 쌀 편중 현상이 심화할뿐더러, 타작물 재배 농가와의 형평성 문제도 눈여겨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태훈 선임연구위원은 “한정된 농업 예산에서 쌀 관련 지출이 늘어나면 다른 분야의 정책 활용의 여지를 줄이게 될 것”이라며 “품목 간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정책조정실장은 “주곡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쌀에 대한 정책과 예산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라며 “타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들로선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농업 전반을 고려한 농업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쌀값 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재배작물 전환 인센티브 확대를 통한 감산 유도’와 ‘소비 촉진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태연 교수는 “농민들의 재배 작물 전환을 쉽게 봐선 안 된다. 제조업으로 치면 스마트폰을 만들던 회사가 차를 생산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재배작물 전환기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태훈 선임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식량정책의 관점과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쌀이라는 특정 품목 중심 정책에서 식량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고, 벼 재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는 ‘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범진 실장은 “정부가 소비 촉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가 현재 대안 1순위로 보는 가루쌀 사업을 비롯해, 기능성 쌀, 고품질 쌀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정빈 교수 역시 “식생활 교육을 확대해 쌀 소비 촉진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미디어를 통해 ‘저탄고지’ ‘빵 위주 식단’ 등이 확산하고 있는데, 이런 편향적인 영양 공급이 잘못된 것이라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박용선 기자

ㅡ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태훈 “정치권에서 쌀값 안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의무매입을 통한 해결방식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과잉생산 구조가 확대될 수 있다.”

임정빈 “민주당이 추진하는 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초과 생산량이 예상 수요의 3%를 넘고, 5% 이상 가격이 하락하면 의무매입을 하자는 게 핵심인데, ‘3%·5%’ 룰은 실제로 시행하기 어렵다. 수요 예측과 생산량 집계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인데, 통계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다. 지역마다 산지 쌀 가격이 다른데, 쌀 가격 하락 기준의 지역과 시점을 짚는 것도 문제다. 산지별로 대응한다면 ‘농농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현재 쌀값 문제의 핵심은 과잉 공급 구조인데, 정쟁이 ‘의무매입’에만 매몰돼 있는 것도 아쉽다.”

김태연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쌀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정책이다. 국가가 의무적으로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하면 농민들은 굳이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하기보다는 많은 양을 생산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물을 농사하지도 않을 것이고, 남는 쌀은 결국 폐기하게 돼 실질적인 곡물 자급률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건 외국에서도 도입했다 모두 실패로 돌아간 정책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안 된다.”

최범진 “한농연은 ‘의무매입 반대’보다는 신중론에 가깝다. 해당 정책의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타작물 재배 전환 사업 등의 효과를 살펴본 이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현재 쌀값 문제의 해법은 ‘수급 불균형 해소’가 최우선이라고 본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 /한농연 제공

ㅡ민주당과 농민단체는 쌀값 안정을 위해 의무매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반면, 정부는 의무매입제도가 쌀값 안정에 역효과가 있을 것이라 지적한다. 왜 그런가?

김태훈 “단기적으로 초과생산량을 모두 격리하면 일시적으로는 가격지지가 될 수 있지만, 농가에 쌀 생산확대의 유인으로 작용해 공급과잉구조가 심화하고 가격 하락 압박이 커질 것이다.”

임정빈 “당연하다. 정부가 판매를 보장하면 농민들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생산을 줄이려는 노력도 안 할 테고, 이는 결국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ㅡ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우리 농업의 쌀 편중이 더욱 심화하고, 타 품목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닌가?

김태훈 “의무매입으로 가격을 일정 수준 지지해준다면 논에서 타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도 안정적 수입이 기대되는 쌀로 회귀할 수 있다. 쌀 편중 현상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농업예산에서 쌀 관련 지출이 늘어나면 다른 분야의 정책 활용 여지를 줄일 수 있다. 이는 품목 간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김태연 “농민 입장에선 쌀농사가 매우 편하다. 쌀 생산이 계속 늘게 되고, 쌀 처리에만 예산이 대거 지출될 것이다. 다른 작물에 지원될 예산이 쌀에 쓰이니 농민 입장에선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결국 한국 농업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농업 발전을 위해선 농민들이 다양한 품목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해야 하는데, 쌀 관련 기술만 기형적으로 커지게 될 것이다.”

최범진 “주곡이라는 상징성에서 쌀에 대한 정책과 예산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타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들로선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농업 전반을 고려한 농업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단국대 제공

ㅡ정부가 작년 말 45만톤을 시장격리하면서 막대한 재정을 썼는데, 이러한 행위 자체가 농민들에게 ‘쌀값은 국가가 보장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닌가?

임정빈 “쌀 농업이 망하면 한국 농업이 붕괴한다. 쌀은 농가 소득의 30%를 차지한다. 논의 공익적 가치에서도 논 보전을 위한 쌀값 안정은 필요하다. 정부의 재량적인 판단에 따른 시장 격리 등 적절한 개입은 필요하다.”

김태훈 “과도한 가격 하락이나 폭등 같은 투매·투기현상으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 정부가 개입할 명분은 있다고 본다. 다만 정부의 시장 격리는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김태연 “긴급한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응당 필요하다. 쌀값이 폭락한 작년 10월에 내린 격리 조치는 불가피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격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나 희망을 주는 수준까지 가선 안 된다. 모든 농산물이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데, 쌀만 예외일 순 없다.”

ㅡ농업 현장에선 타작물 재배 전환을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정빈 “재배 전환 인센티브가 약하다. 인센티브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농민들이 다른 전략작물을 농사할지 의문이다. 농가도 합리적인 경제주체다. 쌀농사 이상의 소득이 보장돼야 옮길 것이다.”

최범진 “장기적으로 재배작물 다양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략작물 생산량이 갑자기 증가하면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농가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김태연 “쌀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재배 작물을 전환해도 소득이 하락하지 않도록 안정판을 보장해야 한다. 앞서 인수위 도농상생발전위원회에선 농촌 관련 공약으로 ‘농촌 소득원 특별지구’를 제안한 바 있다.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평균 연소득의 120%를 보상하고, 향후 5년간 벼를 키우던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쌀 감산을 유도하면서, 다른 곡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필요한 재정을 추산해보니 7000억원 규모였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매년 1조원 이상의 격리 비용이 필요하다는데, 적은 재원으로 농업 체질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정책이라고 본다.”

김태훈 농경연 선임연구위원. /농경연 제공

ㅡ추가적인 정책 제안을 한다면?

최범진 “현재 의무수입물량의 공적개발원조(ODA)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쌀과 관련해선 정부가 소비 촉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현재 대안 1순위로 보는 가루쌀 사업을 비롯해, 기능성 쌀, 고품질 쌀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임정빈 “식생활 교육을 확대해 쌀 소비 촉진을 유도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저탄고지’ ‘빵 위주 식단’ 등이 확산하고 있는데, 이런 편향적인 영양 공급이 잘못된 것이라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김태훈 “쌀은 남아서 문제이고, 쌀 이외 작물은 자급률이 매우 낮아서 문제다. 쌀 생산감축의 관점에서 전략작물직불제를 시행하지만 장기적으로 식량 정책의 관점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쌀이라는 특정 품목 중심 정책에서 식량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고, 벼 재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는 ‘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