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3만50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 당했다. 지난해 세계 경제를 뒤흔든 강(强)달러에 원화 가치가 급락한 영향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와 같은 이례적인 원·달러 환율 급등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민소득이 머지 않아 4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2022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전년 대비 7.7% 줄어든 3만2661달러(원화 기준 4220만3000원)로 나타났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해 동안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것으로, 국민 생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 지표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2023.3.1/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국민소득,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대만에 밀려

최정태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민계정부장은 이날 오전 열린 설명회에서 “원화 기준 1인당 GNI가 전년 대비 4.3%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원·달러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달러화 기준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7.7%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0년 만에 대만에 역전 당했다. 대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달러화 기준 대만의 1인당 GNI는 3만3565달러였다.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앞지른 이유에 대해 최정태 부장은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12.9% 상승하는 동안 대만 환율은 6.8% 올랐다”며 “환율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지난해 원화 가치가 대만 달러화 가치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그 여파로 대만의 명목 GNI 성장률(4.6%)이 우리나라 명목 GNI 성장률(4.0%)을 앞질렀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1994년 1만달러를 넘어섰고, 2006년 2만달러를 돌파했다. 나아가 2017년 국민소득이 3만1734달러를 기록하면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2018년에는 3만3564달러까지 늘었다. 그러나 2019년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원화 약세, 2020년 코로나 충격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하면서 2년 연속 감소했다.

이후 2021년에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4% 성장하고 원화 가치가 3% 상승한 데 힘입어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3만5000달러대로 올라섰다. 당시 한국은행은 “경제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수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국민소득도 다시 3만5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수도 타이베이에서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소득은 경제 성장률(실질 GDP)과 물가(GDP 디플레이터), 환율, 인구 등의 영향을 받는다. 지난해 1인당 GNI 감소 규모(2712달러)를 요인별로 살펴보면 환율 상승으로 인한 국민소득 감소분은 4207달러에 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2021년 연평균 1144원에서 지난해 1292원으로 12.9% 뛰었다.

반면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은 각각 896달러, 437달러씩 국민소득 증가에 기여했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수출 증가세 둔화에도 민간소비가 견조한 회복 흐름을 보이면서 2.6%를 기록했다. 종합물가지수로 불리는 GDP 디플레이터는 1.2% 상승했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것으로,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요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다.

이밖에 국외순수출요소 소득(88달러)과 인구 감소(74달러)도 국민소득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번 소득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번 소득을 뺀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은 지난해 24조원 늘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 연합뉴스

◇ 한은 “성장률 2% 내외 유지하면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가능”

한국은행은 환율이 이례적으로 급등하지 않는 이상 국민소득이 올해 다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연초 1200원대로 하락했던 환율은 지난달 미국의 긴축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1300원대로 올라섰지만, 변동폭이 컸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아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국민소득 4만달러’ 목표에 대해서는 조만간 달성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최정태 부장은 “한국은행 조사국의 전망대로 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각각 1.6%, 2.4% 안팎을 기록하고, GDP 디플레이터가 2% 내외로 상승하면서 환율이 과거 10년 평균인 1145원 수준을 유지할 경우 1인당 국민소득도 머지 않아 4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의 경우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긴 뒤 4만달러를 돌파하기까지 평균 5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