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자동차 수출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 개선과 친환경차 수요 확대 등에 힘입어 작년 하반기부터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주력 수출 품목 반도체가 연일 무너지는 가운데 우리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 내부적으로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고민이 큰 상황이다. 차량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커지면서 공급망 리스크 역시 커졌기 때문이다. 또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육성에도 난항을 겪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이 점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부두 인근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 뉴스1

◇ 작년 하반기부터 자동차 수출이 반도체 자리 대신해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은 541억달러로 전년 대비 16.4% 증가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심화했던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작년 상반기 이후 서서히 풀리면서 잔뜩 쌓인 주문량 해소에 속도가 붙었다. 한국산 친환경차가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은 덕도 봤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은 7월 이후 매월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한 끝에 역대 처음으로 연간 실적 500억달러 고지를 넘었다. 순풍은 새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자동차 수출은 49억8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21.9% 늘어났다. 역대 1월 중 최고치다.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의 수출 질주는 2월에도 지속 중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승용차 수출액은 33억5800만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6.6% 급증했다. 정부 관계자는 “생산 차질로 생겼던 대기 수요, 친환경차·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고부가 차량 수요 확대에 따른 수출단가 상승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광주 서구 기아오토랜드에서 직원들이 완성차를 카캐리어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자동차 수출 호조를 이어가기 위해 업계 지원에 사활을 건다는 방침이다. 규제 개선과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오는 2026년까지 95조원+알파(α) 규모의 투자를 예고한 국내 완성차 업계를 밀착 지원하고, 자동차 생태계가 내연기관차 중심에서 미래차로 유연하게 전환되도록 내연기관차 부품기업의 사업 다각화를 돕는다. 이를 통해 현재 5%인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2030년 12%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 자동차 산업 외면하는 소프트웨어 인재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 자동차 업계 앞에 놓인 현실이 정부 로드맵처럼 매끄럽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수출이 지속해서 증가하려면 전기차 등 친환경차 관련 역량을 확실히 키워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전기차 산업 성패의 열쇠나 마찬가지인 차량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심각한 전문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친환경차 관련 인력은 4만2000명,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력은 1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2023년 현재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친환경차 인력 27만명,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력 3만명에 이르는 미국과 비교하면 격차가 매우 크다. 산업부가 집계한 미래차 분야 기술인력 부족 비중에서도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1위에 올라있다.

현대오토에버의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모빌진'을 적용해 제작한 차량 모형.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현대오토에버

개발 분야 고급 인력이 자동차 업계를 향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헬스 등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찾는 업종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전문인력 입장에선 처우가 가장 좋거나 경력 관리에 유리한 분야를 택하기 마련인데, 이 관점에서 보면 자동차 산업은 후순위로 밀린다.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개발자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산업부는 작년 9월 발표한 ‘자동차 산업 글로벌 3강 전략’에서 “2030년까지 소프트웨어 융합인력 1만명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진 못했다. 전국 15개 대학을 중심으로 미래차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을 키운다는 전략이지만, 대학조차도 남을 가르칠 만한 전문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게 현실이다.

어찌저찌 1만명의 전공자를 만들어도 그들 모두가 현장에서 요구하는 ‘전문인력’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문송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소프트웨어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인데, 소프트웨어에 관한 우리 정부의 관심은 지난 30년 동안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지 않으면 미래는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 산업 글로벌 3강 전략 방향. / 산업통상자원부

◇ 전기차 핵심 소재 다수 중국서 수입 ‘공급망 리스크’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확산하고 공급망 재편이 가팔라지는 상황에서 차량에 탑재되는 각종 부품·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도 한국산 자동차 수출을 위협하는 요소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부품 수입국 가운데 중국 비중은 2000년 1.8%에서 2021년 34.9%로 급등했다.

전기차 부품인 이차전지 소재 중에서는 음극재의 83%, 양극재·전해액·분리막의 60% 이상을 중국에서 사온다. 또 제련한 원자재는 흑연 100%, 망간 93%, 코발트 82%, 니켈 65%, 리튬 59%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전기차 수출이 늘면서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수산화리튬 수입도 급증했다”며 “수입선 다변화와 대체 생산이 절실하다”고 했다.

정부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27일 발표한 ‘핵심광물 확보전략’에서 수급 위기 대응을 위해 핵심광물 비축일수를 현 54일에서 100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긴급 상황 시 수요 기업에 8일 내 원료를 공급할 수 있는 비축물자 신속 방출제도 도입도 추진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현재 80%대에 이르는 핵심광물 특정국 수입 의존도를 2030년 50%대로 완화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산업계도 중국 의존도 완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다만 정권마다 광물 자원에 대한 철학이 달라졌던 과거를 떠올리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산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는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그 이후로는 지지부진했다”며 “정부가 광물 확보를 수익성이나 정치 논리로 접근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