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관행적으로 연간 억대의 월례비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무당국이 납세 여부 확인에 들어갔다. 상납금 형태로 받아온 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세금을 탈루한 기사들에 대해 세무당국이 추징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사들에게 지급한 월례비를 회계장부에 다른 비용으로 허위로 정리해온 건설업체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 내에선 건설 현장의 불법행위를 빠르게 근절하기 위해 스스로 신고한 업체들에 대해선 면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세금 피하려 차명 계좌로 월례비 받아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건설사들이 타워크레인 기사 438명에게 지급한 월례비는 243억원에 이른다. 가장 많이 받은 기사는 1년 동안 2억2000만원을 받았다. 계좌이체 내역 등으로 확인된 금액만 집계한 결과다. 현금으로 지급해 기록이 없거나, 중소업체들이 제공한 명세는 빠졌다. 이처럼 음성적으로 제공한 비용까지 합산하면 월례비 규모는 더욱 불어날 것이란 게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토부는 현장 조사 과정에서 크레인 기사들의 탈세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조사를 지휘한 국토부 관계자는 "상당수의 기사가 월례비 수령 사실을 숨기기 위해 친척이나 지인 계좌 등으로 월례비를 받고 있었다"면서 "세금을 피하려고 차명계좌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인 단계로, 특정 기사의 탈세 혐의가 드러나면 국세청에도 인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21일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대책' 브리핑에서 "노조 조직을 통해 오고 간 돈은 불법적 소득일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세무조사 등에 대해선 세무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면서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 근로소득 7000만원, 월례비 2억…본봉보다 많은 뒷돈
세무당국도 크레인 기사들의 소득 규모와 월례비 실체 파악에 나섰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일반적으로 월 500만~600만원 가량의 근로 소득을 받는다. 원청사인 대형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업체와 체결하는 계약에는 기사 임금을 포함한 일체의 비용이 들어있다. 월례비는 이러한 정상적인 근로 계약과 관계가 없는 비용이다.
건설 현장에서 소장들이 '오늘 일 열심히 해달라'라며 담뱃값으로 5만~10만원가량 챙겨주던 게 관행이 돼 악습으로 남았다. 일 단위로 받던 것을 월 단위로 달라고 하면서 목돈이 오가게 됐다. 시공사뿐만 아니라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들도 크레인 기사들에게 '우리 자재를 먼저 올려달라'며 월례비를 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재 납품 업자들은 납품한 물건이 올라갈 때까지 밑에서 기다려야 하는 처지"라며 "물건이 빨리 올라가야 다른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어 크레인 기사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뒷돈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단발성으로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들은 '속행비'라는 이름으로 기사들에게 뒷돈을 준다.
꼬리표가 없는 돈에 대해 소득 신고를 했을 가능성은 매우 작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월례비를 소득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대부분 소득 신고를 누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락된 세금은 당연히 추징 대상이다. 추징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세무당국 관계자는 "기사가 신고한 소득에 월례비를 합산해 과세표준을 산출하고, 여기에 신고 누락에 따른 가산세가 붙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 소득을 7000만원으로 신고한 크레인 기사가 2억원의 월례비에 대해선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해당 기사가 내야 하는 세액은 7500만원에 달한다.
◇ 월례비 만들려 회계 분식한 건설사도 문제
세무 업계에선 월례비를 지급해온 건설사들의 회계 장부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출내역이 없는 월례비를 만들어 지급하는 과정에서 회계 분식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영범 YB세무컨설팅 대표세무사는 "월례비 문제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소득 신고 누락과 건설사의 회계 분식을 함께 봐야 한다"면서 "지출 내역이 없는 돈을 마련해 지급했다면, 회계장부 어딘가에 허위로 비용을 정리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 건설업체들은 월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재비나 인건비 등을 허위 혹은 과다 계상하는 방식을 써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업체는 접대성 경비 지출로 월례비를 회계 처리하기도 했다.
국토부에서도 건설 현장의 악습과 관행이 유지되는 것에 대한 건설업계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건설업계에 검은돈이 너무 많이 오고 갔다"라며 "이러한 비용은 결국 건축물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업체들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무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선 건설사들의 협조가 필수인데, 건설사들에 책임을 물으면 되레 음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국토부 내부에선 원활한 실태 파악을 위해 자진 신고한 업체들에 대해선 책임을 면제해주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