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0%에서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경기 둔화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고려해 금리를 더 이상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5% 안팎으로 높지만, 한국은행 통화정책 결정의 무게 중심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서 경기와 금융안정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금리 동결이 유력하다고 평가했다. 물가를 확실하게 꺾기 위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더 올리면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물가와 경기 흐름을 지켜볼 것이란 설명이다.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한 채권시장의 전망은 엇갈렸다. 전문가 대다수는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기준금리 3.5%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하반기 들어 경기 회복 속도가 느리거나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빨리 안정될 경우에는 한국은행이 10~11월부터 금리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뉴스1

◇ ‘물가보다 경기’ 전문가 만장일치 ‘금리 동결’ 예상

조선비즈가 19일 국내 증권사 거시경제·채권시장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모두 한국은행이 오는 23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0%에서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고금리로 소비가 주춤하고, 수출도 부진해 경기 둔화 흐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이달까지 8회 연속으로 금리를 인상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5%대 고물가 억제를 위해 지난달까지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7회 연속 올린 바 있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경기 흐름이 이미 꺾인 상황이고 정부도 경기 둔화 우려를 표명하고 있어 (한국은행 입장에서) 추가 긴축 부담이 높다”며 “미국과 달리 한국은 경제활동 재개 효과 소멸, 높은 이자 부담에 의한 소비 여력 축소 등으로 민간소비 약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고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 자산과 부채를 고려하면 부동산 경기 부진에 따른 성장세 추가 약화 우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이달 처음으로 한국 경제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서 “경기 흐름이 둔화했다”고 공식 진단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경기 부양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가 중립금리(경기를 과열 또는 위축시키지 않는 적정 수준의 금리) 상단으로 추정되는 2.75~3.0%를 크게 웃돌고 있기 때문에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해도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5%대 전후로 높기 때문에 통화당국 차원의 물가 견제에 대한 의지는 상당하다”며 “그러나 2021년 8월부터 이뤄진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대응을 위한 방파제로서의 금리 수준은 이미 확보했다”고 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금리 기조를 예상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위험) 요인이지만, 현재는 성장률 둔화 우려가 더 크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미 정책금리 역전폭 확대에 대한 리스크는 남아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내 경기, 부동산 시장 경착륙 가능성, 정부 대출금리 인하 압박 등을 고려하면 금리 동결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고 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성장률 둔화 부담이 다른 국가보다 크고, 금융안정 측면에서 부동산 시장 리스크 관리도 필요하다”며 “이번에는 금리를 동결하면서 그간 누적된 금리인상의 효과를 지켜본 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보고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 연말 금리인하 VS 금리인하는 내년부터

한국은행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10명 중 3명만 ‘한국은행이 연말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나머지 7명은 한국은행이 올해까지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에서 유지하고 내년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고 봤다. 다만 이 중에서도 4명은 상황에 따라 금리 인하 시점이 올해 4분기로 앞당겨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못 할 정도로 한·미 금리 격차가 벌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내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만약 하반기 들어 경기 회복 속도가 더뎌진다거나 물가가 더 하락한다면 11월쯤 금리 인하로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꺾이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내 금리 인하는 어려울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 가능 시점은 빨라야 내년 1분기”이라며 “물가상승률이 3% 수준까지는 떨어져야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는데,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지 않는 이상 연말에 물가상승률이 3% 초반대로 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2023년 첫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3/뉴스1

◇ “한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 1.5% 안팎으로 하향 조정”

전문가 10명 모두 한국은행이 이달 금통위에서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5% 수준으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1.7%)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망치를 낮추겠다고 언급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미 주요 민관 기관 대다수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 중반으로 낮췄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연초 발표했던 제조업체들이 본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 초반에 그쳤다”며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한국은행도 1% 중반대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의 3.6%를 유지하거나 0.1%p 소폭 상향 조정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이재형 유안타증권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이 기존 물가 전망에 국제유가와 공공요금 인상 요인을 일정 부분 반영했기 때문에 유가가 크게 오르내리지 않는 이상 연간 물가상승률 3.6% 전망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