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이잉, 치익, 탕탕탕, 드르륵.'

작년 12월 19일 경남 사천 사남면에 있는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이하 켄코아) 사남공장. 드넓은 부지에 길게 뻗은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기계음이 귀를 찔렀다. 금속 자재가 절삭 과정에서 쏟아내는 마찰음 위로 작업자들이 강판을 두드리고 나사 조이는 소리가 포개졌다. "화물기 하중 보강용 바닥과 도어 프레임 등에 쓰이는 알루미늄 플레이트를 만든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현장 안내를 맡은 박길주 켄코아 부장이 말했다.

공장 한쪽에서는 작업복 차림의 직원 여럿이 헬리콥터 뼈대를 조립하고 있었다. 이 회사가 미국 보잉사에 납품하는 소형 공격형 헬기 동체였다. 공군 초도 훈련비행기 'KT-100′도 보였다. 헬기와 비행기의 존재가 이곳을 공장이라기보다는 항공사 격납고처럼 느껴지게 했다. 박 부장은 "항공기 동체 조립은 전문가의 수작업이 필수"라며 "국산 헬리콥터 '수리온'의 후방동체·조종장치 양산 경험을 바탕 삼아 동체 전체 조립으로 사업 영토를 넓혔다"고 했다.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공군 초도 훈련비행기 'KT-100′ 동체를 살피고 있다. /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 보잉·록히드마틴·KAI 등 마음 사로잡아

켄코아는 2013년 4월 설립된 항공우주 전문기업이다. 사천 본사와 미국 자회사를 중심으로 아시아·북미·유럽 지역의 항공우주 산업계에 항공기 부품 가공·조립과 유지보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업력은 10여년에 불과하지만 정교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대한항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보잉·록히드마틴·프랫앤드휘트니 등 글로벌 대형 항공업체까지 고객사로 확보했다.

회사 설립 초기인 2014년 16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548억원으로 8년 만에 34배 이상 불었다. 수출 경기 악화에도 켄코아의 작년 연간 매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75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과 비교하면 47배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작년 3분기까지 42억원을 찍은 영업이익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직원 수는 설립 초 40여명에서 현재는 약 400명으로 10배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도 켄코아의 성장세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보잉 B-767·777 기종의 구조물 생산과 완제기 조립 노하우를 바탕으로 에어버스 항공기 PTF(Passenger to Freighter·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F-35와 F-22 전투기에 탑재되는 부품을 생산·납품 중이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에도 참여했다"고 했다.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직원이 부품 생산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 사천=전준범 기자

◇ 보잉 연속 추락 뒤 찾아온 코로나19 사태

이렇게만 보면 켄코아가 설립 이래 쭉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 위기는 이 회사가 한창 성장 가도에 있던 2018~2019년 들이닥쳤다. 핵심 고객사 중 한 곳인 보잉사의 '737맥스' 항공기가 연거푸 추락하면서 '죽음의 비행기'라는 오명을 얻은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737맥스 기종 운항을 중단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정재한 켄코아 부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P/O(Purchase Order·구매 주문서)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6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받았고, 직원들도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회사로선 보잉 의존도가 높았던 매출 구조를 다변화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런데 그때 하필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터졌습니다."

737맥스의 연이은 추락 사고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마저 찾아온 것이다. 켄코아로선 생존을 위한 사업 영토 확장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켄코아가 택한 미래 먹거리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PTF 사업. 우수한 기술력과 품질, 납기 준수 능력이 있었기에 에어버스 여객기를 화물기로 바꾸는 글로벌 PTF 사업에 합류할 수 있었다.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 사천=전준범 기자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켄코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물기 개조에 필요한 각종 금속 제품 개발용 원소재를 100%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보잉-팬데믹 사태를 잇달아 겪으면서 회사의 유동성이 일시적으로 악화한 것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심화하면서 파운드당 3달러 수준이던 알루미늄 플레이트 가격이 6달러 이상으로 두 배 넘게 올랐다.

정 부사장은 "해외에서 사온 원소재를 가공·조립해 수출하면 몇 개월 뒤 돈이 들어오는 구조인데, 여러 악재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원소재 조달에 필요한 자금이 잠깐 부족해졌다"며 "원자재 확보가 늦어져 약속한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신뢰 관계에 금이 가고, 후속 사업 참여를 보장받을 수 없어 우려가 컸다"고 회상했다.

◇ 단기 자금경색 뚫어준 무보 특례지원

절체절명의 순간, 구세주로 등장한 존재는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였다. 무보는 성장 잠재력과 기술력은 충분한데 일시적으로 무역보험 이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을 대상으로 '무역보험 특례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무보는 내부 심사 절차를 거쳐 켄코아를 무역보험 특례지원 대상 업체로 선정했다.

그래픽=편집부

켄코아는 무보로부터 받은 긴급 자금을 원소재 수입 예산에 보탰다. 막힌 혈이 뚫리자 다음 단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켄코아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납기 내에 무사히 수출했고, 2020년 2600억원 규모의 1차 수주에 이어 2021년 1200억원 규모의 2차 수주까지 모두 따낼 수 있었다. 정 부사장은 "무보의 특례지원 제도가 문제 해결의 시발점 역할을 해줬다"며 "지금 켄코아는 그때와 전혀 다른 회사로 탈바꿈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무보의 무역보험 지원 금액은 2017년 145조원에서 2022년 220조원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견·중소 수출기업 지원금액은 48조원에서 70조원으로 늘었다. 켄코아 사례와 같은 무역보험 특례지원 실적도 늘고 있다. 2018년 38억3000만원 수준이던 무역보험 특례지원 규모는 지난해 377억8000만원으로 4년 사이 10배가량 불어났다.

이인호 무보 사장은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출을 포기하지 않고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할 수 있도록 사각지대 없는 전방위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