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 대다수는 내년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조선비즈 경제 전망조사에서 9.7%에 불과했던 1%대 성장 전망은 반년 만에 95%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오히려 2% 이상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5% 소수의견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의 경제 전망이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중후반대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3% 초반 이하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올해처럼 5%대 인플레가 다소 완화되겠지만, 3% 중반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다수였다. 5%대 고물가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45%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내년 한국 경제가 ‘저성장-고물가’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는 경기둔화에도, 고물가 상황이 상당히 오래 유지되는 복합적 경제위기가 펼쳐질 수 있다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 “2023년 1%대 저성장이 온다”

조선비즈가 국내 경제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경제전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5%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1.5~1.9%대를 예측한 전문가가 29명(72.5%), 1.0~1.4%를 예측한 전문가가 8명(20%), 0%대를 예측한 전문가가 1명(2.5%)이었다. 2%를 넘을 것이라고 본 전문가는 2명(5%)에 그쳤다.

6개월 전인 지난 5월 실시한 ‘하반기 경제전망 설문조사’에서는 2023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1%로 내다본 전문가는 9.7%에 불과했다. 소수의견이었다. 당시 설문조사에서는 2.0~2.3%로 전망한 응답이 38.7%로 가장 많았고, 2.4~2.6% 성장 전망이 29%, 2.7~2.9% 성장 전망이 16.1%였다. 전문가 10명 중 9명은 내년 한국 경제가 2%대 이상 성장한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의 달라진 시선은 그만큼 내년 경제 전망이 어두워졌다는 의미다. 현재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 대응을 위해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통화 긴축에 나서면서 나타나는 글로벌 경기 둔화세를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 경기 하강 등 한국 산업의 전반적인 위축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과 함께 수출 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반면 에너지·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하며 수입액은 계속 늘고 있다. 한국경제의 핵심 성장축이었던 무역이 ‘적자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 나타났던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소비 폭발 현상)’도 물가 상승 영향으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도 “6개월 전 예측 대비 성장률 전망이 대폭 하향된 것은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가 더딘 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총생산에서 비용적 요소가 증가했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산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높은 물가 상승률 때문에 미국 등 주요국이 고금리를 유지하다보니 소비와 투자가 침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한국은행 역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높게 유지하고 국내 소비도 위축되는 등 내수 경기도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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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물가는 ‘3%대 후반’…5%대 고물가, 45% ‘6개월 이상 지속’ 관측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21명의 응답자(52.5%)가 내년 물가상승률을 3.5~3.9%로 전망했다. 이어 4.0~4.9%대 물가 상승률을 전망한 전문가가 9명(22.5%), 3.0~3.4%대를 전망한 전문가가 5명(12.5%)였다. 2%대는 4명, 5% 이상을 전망한 전문가는 1명이었다.

‘현재 전년 대비 5%대 상승률을 횡보하는데, 이 같은 고물가 추세가 얼마나 갈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는 21명(55%)의 전문가가 ‘향후 6개월 이내’라고 답했다. 이어 내년 하반기(6개월~1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전문가가 12명(30%), 1년에서 1년6개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도 4명(10%)이었다.

6개월 내 고물가 상황이 잡힐 것이라고 본 전문가들은 대부분 내년 상반기에는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물가상승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지난 3월부터 이뤄진 금리 인상의 효과가 1년여의 시차를 두고 물가가 잡히는 신호로 나타날 것”이라며 “올해 기록한 높은 물가 상승률의 기저 효과와 함께 6개월 이내 물가 상승률이 3~4%대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발표된 11월 소비자물가가 5.0%로 전월 대비 0.7%P 떨어졌는데, 이는 원자재 가격 안정 때문”이라며 “에너지·원자재 가격 정상화로 물가도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기에 환율도 완정화되고 있는데, 수입 물가가 하락하면서 국내 물가도 내려가게 될 것으로 본다. 내년 물가 상승률은 연초 4%에서 시작해 연말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 “저성장·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 이미 진행 중”

반면 고물가 상황 장기화를 예측한 전문가들은 현재의 고물가 국면이 일시적인 게 아닌 구조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렬 센터장은 “현재 세계 경제는 생산성 둔화와 함께 분업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수요 감당이 어려운 구조가 됐다”면서 “서비스 물가로 인해 물가 상승이 가준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 물가 상승으로 가계 소득원이라 할 수 있는 임금 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어 ‘인금 인상발(發) 물가 상승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 둔화로 중앙은행이 물가 위험이 사라질 만큼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지속하기 어려워 질 것이는 이유에서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이 구조적인 경제 환경으로 안착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경제 상황은 경기 부진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동시에 이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본다”면서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고, 이러한 고금리가 추가적인 경기 부진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물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이유는 물가를 완전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금리를 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기 때문”이라며 “중장기 목표 물가상승률 구간인 2%대로 까지 낮추려면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하는데, 경기 부진과 가계 부담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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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참여하신 분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권혁상 NH투자증권 이사 ▲길광수 KB국민은행 자산운용부장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 ▲김종민 메리츠화재보험 부사장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 ▲김현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부 교수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 ▲선정훈 건국대 경영대 교수(한국증권학회장)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 ▲신환종 한국투자증권 상무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안형상 키움투자자산운용 본부장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재형 유안타증권 연구위원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이한영 DS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조원경 유니스트 교수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석원 SK증권 지식부문장 ▲추광호 한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허관 신한투자증권 본부장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홍성욱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황인선 국제금융센터 부원장 ▲3명 익명으로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