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90% 이상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세계에서 열 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쓴다.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정책 방향을 기존 공급 중심에서 수요 효율화 중심으로 전환해 오는 2027년까지 국가 에너지 효율을 25% 개선하겠다고 선언한 이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키운 에너지 대란 우려와 에너지 수입 증가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확대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소비 절감은 국민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국가적 과제로 꼽힌다.

문제는 아직 우리 국민의 관심 정도가 정부 노력과 달리 뜨뜻미지근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 중인 ‘에너지 캐시백’ 참여율이 당초 예상치의 20% 수준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에너지 캐시백은 주변 다른 단지·세대보다 평균 전기 사용량이 적으면 그만큼 돈으로 돌려받는 제도다. 정책 홍보를 강화해 더 많은 국민을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동참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시내의 한 오피스텔에 전기 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 18만세대 참여 기대했지만…3만8450세대만 관심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7~8월 2개월간 에너지 캐시백 참여자를 모집한 결과 전국에서 총 3만8450세대가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정부가 기대한 수준의 약 20%에 불과하다. 에너지 캐시백은 전체 참여 세대·단지의 평균 절감률보다 높은 절감률을 기록한 세대·단지에 해당 절감량에 상응하는 현금을 6개월 단위로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산업부는 에너지 캐시백 참여 가구를 약 18만세대로 예상하고, 이 중 30~40% 정도가 실제 소비 절감에 성공해 현금을 돌려받을 것으로 봤다. 가구 수로 따지면 6만4200세대가 에너지 캐시백에 성공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모집 결과는 예상치에 한참 못 미치는 3만8450세대에 그쳤다. 산업부는 현재 참여 가구를 추가 모집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 2~5월 세종·나주·진천 등 3개 지자체에서 에너지 캐시백 시범사업을 실시해 총 779메가와트시(MWh)의 전기를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현대 전기차 ‘니로’ 1만2200대를 완충할 수 있는 전력량(490만km 주행 가능)에 해당한다. 세대 평균 절감률은 14.1%에 달했다. 정부는 “시범사업 참여자의 99%가 사업 재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에너지 캐시백 흥행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10월 1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복도의 조명 50%가 소등돼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본사업 돌입 후 정부는 흥행 참패의 쓴맛을 봤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홍보가 덜 된 신규 사업을 추진하면서 모집 기간(2개월)이 너무 짧은 측면이 있었다”며 “추가 모집을 진행 중인 만큼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에너지 캐시백 참여 가구 학생에게 봉사활동 1시간을 인정하는 아이디어 등을 다각도로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 에너지 9할 수입하면서 펑펑 써… “에너지 절약 동참해달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캐시백 규모가 구미에 확 당기는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에너지 캐시백 미션에 성공한 세대는 절감량 1킬로와트시(kWh) 당 30원을 받는다. 한국전력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구당 월평균 전력 사용량은 236.14kWh다. 에너지 캐시백 시범사업의 평균 절감률인 14.1%를 적용하면 에너지 소비 절감에 성공해도 돌려받는 돈은 약 1000원에 불과하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박효진(가명) 씨는 “이미 전기를 충분히 아끼면서 살고 있다”며 “1000원 벌기 위해 여기서 더 절약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절약)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에너지 캐시백 제도 자체가 국민의 에너지 소비 효율을 유도하려는 일종의 당근 정책인데, 환급금 규모를 따지는 태도는 솔직히 조금 아쉽다”며 “다 함께 에너지 위기 극복에 동참한다는 마음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이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 터틀넥(목티) 차림으로 참석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에너지 소비 절감에 나서는 건 우리나라가 세계 10위의 에너지 다(多)소비 국가인 동시에 저효율 소비국이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7배 이상 많다. 반면 에너지원단위는 OECD 36개국 중 33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에너지의 93%는 수입된다. 올해 1~10월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전년 동기 대비 수입 증가액은 716억달러다. 같은 기간 전체 무역 적자(356억달러)의 2배를 웃돈다.

현재 정부는 겨울철 에너지 사용량 10% 절감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다이어트10′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공공기관의 실내 평균 난방온도를 18도에서 17도로 1도 낮추고, 개인 난방기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달 18일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 터틀넥(목티) 차림으로 등장해 “국민 여러분께 겨울철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당부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