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신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법제가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 2차전지나 수소연료 추진선박을 개발하려고 해도 해당 선박에 대한 안전기준이 미비해 선박 건조나 운항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전남지역에서 중소조선사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조선산업의 신기술 도입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자율운항이나 친환경 선박 관련 신기술이나 장비를 개발하더라도 관련 규정이 없어 상용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조선해양이 건조한 자동차운반선.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 조선업 신기술 경쟁 치열한데…법은 ‘안 된다’라고만

세계적으로 선박의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 조선산업이 수혜를 누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는 내용의 환경규제를 추진 중이다. IMO의 강력한 규제는 기존 선박 대비 탄소 배출이 적은 LNG추진선과 수소연료추진선박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 이 중 LNG추진선은 국내 조선소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선종으로 꼽힌다. 조선업계에선 2030년까지 세계 LNG선 발주량의 60%를 국내 조선사가 따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조선 해운업계에선 ‘다음 단계’를 내다본다. LNG는 액화 과정에서 질소·황과 분진이 제거돼 연소 시 공해 물질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무탄소’까지는 아니다. 업계에선 LNG의 대체제로 ‘암모니아’와 ‘수소’를 주목한다. 업계에선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차세대 연료 기반 선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법적 기반이 미비해 기술을 개발하고도 실증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현행 선박안전법은 설비 규정을 준수한 선박에 대해서만 시험 운항을 허용한다. 설비 규정에 포함되지 않은 설비를 장착한 선박은 바다에 띄울 수 없다는 얘기다. 신기술을 적용한 설비가 법에 명시되는 것은 만무한 일이다. 업체로선 관련 설비에 대한 제도가 완료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각광받는 자율주행에 관한 규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행 ‘선원법’과 ‘선박직원법’은 배에는 적정 규모의 선원이 탑승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원격항해조정이나 인공지능(AI) 주행은 현행법상 불법 행위가 된다.

이 같은 규제는 선박뿐만 아니라 선박에 들어가는 기자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행법은 선박에 들어가는 기자재에 대해선 감항성(안전한 항해를 하기 위해 준비된 상태)을 확인하는 형식 승인 제도를 요구한다. 형식 승인 절차는 ▲정부의 안전기준 제정 ▲지정기관의 시험 평가 ▲정부의 형식승인 ▲검사기관의 검정 이라는 4단계로 진행된다. 신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이 네 단계를 모두 밟아야 해 장시간이 소요된다.

군산 한국선급 그린십기자재시험인증센터에서 테스트 중인 LPG 혼소 연료 엔진. /윤희훈 기자

◇ 해수부도 “규제, 문제있다”… 특례 도입해 R&D 환경 개선

해양산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규제가 국내 선박 관련 R&D를 제한하는 요소로 보고 개선 작업에 착수한다.

자율운항·친환경 선박 관련 시험운항시에는 관련 법령의 적용을 면제하는 내용의 ‘규제특례법’ 상 특례를 마련하고 내년 1분기 중 법 개정 작업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해수부 관계자는 “법령 상 규제를 완화해 해당 기술의 연구 개발 및 조기 상용화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며 “친환경 설비·기자재가 인증을 받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기존 대비 1년 이상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율운항 선박 관련 법 개정 과정에서는 무인 선박의 운항 허용을 넘어 AI의 법적 분류에 대해서도 다룰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해수부 관계자는 “현행법은 선원의 자격을 ‘사람’으로 국한하고 있는데, AI나 로봇 등에 대한 인격 대우 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환영하는 모습이다. 현재 규제자유특구를 중심으로 신기술 개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지만, 해당 특구 밖에서는 기술개발이 제한되는 것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구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에서 영업을 하는 중소 조선사들도 R&D 및 기자재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이번 규제 완화로 정부의 안전 승인과 한국선급 등 민간 전문기관의 검증 과정이 일원화되면서 ‘민간 주도 선박 기술 개발’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천강우 한국선급 친환경기술팀장은 “선급이나 연구원에서 시험평가를 할 때도 안전 요소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종전의 절차는 안전기준 검토를 중복적으로 받았던 셈”이라며 “민간에 신기술 연구 개발에 대한 권한을 상당부분 이양함으로써 기술 상용화도 예전보다 빨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