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의 데이비드 달러(David Dollar)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연구소 건물에서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수출해 전 세계의 경기침체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에 대해 미국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날은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날이기도 했다. 전년 동기 대비 8.2% 상승한 물가 지수를 두고 그는 “실망스럽다”고 평가하면서 “현재 3.5%인 실업률이 4.5% 혹은 그 이상으로까지 올라가야 이런 고물가 상황이 진정될 수 있다는 논쟁이 한창”이라고 말했다. 만약 미국에 경기침체가 온다면 그 시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2008~2009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일찍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거시경제 운용이 잘되는 나라라며 최근 일각에서 불거지는 ‘외환위기설’에 대해서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의 데이비드 달러(David Dollar)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13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연구소 건물에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DC=박소정 기자

◇ “글로벌 인플레·강달러, ‘美-中-러’ 삼박자가 만들어낸 것”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우선 오늘날 인플레이션과 강달러 상황이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여러 상황이 맞물려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간 미 연방·지방정부가 돈을 푸는 경기부양책을 과다하게 사용했다”면서도 “이것만으로 세계적인 인플레가 온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에너지와 식량 가격 그리고 특히나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고, 여기에 중국의 무관용 제로 코로나 정책(Zero Tolerance Policy)까지 가담했다”고 말했다.

강달러 현상에 대해서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여타 국가의 주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기 전에 긴축 정책을 먼저 시작했고, 여기에 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각종 환경이 달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최근 폐막한) 중국의 당대회 등이 그 예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미 연준의 실기(失期·코로나에 따른 역대급 통화완화 정책을 너무 늦게 거둬들였다는 비판)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 연준의 지도부도 공개적으로 그렇게 발언하고 있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며 “다만 사후 위기 상황에 맞는 완벽한 정책이 무엇이었는지를 평가하는 건 너무나도 쉽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50대50′이라고 평가했다.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곤 확신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만약 침체가 시작된다면 그 시기는 내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침체에 빠지더라도 2008~2009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재빨리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며 “수요가 견조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1년 내에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수출한다’는 프레임이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미국에서 가속하기 시작할 때 유럽에선 같은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에서의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중국에서는 전방위적인 인플레이션 문제가 아직 없다”며 “자동차 부품 같은 몇 가지 특정 공급망과 관련된 문제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에서 발생한 일들이 여타 국가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주요 원인이 될 수는 없으며, 각국이 각자의 통화·재정정책을 운용하고 있으니 그 믹스(조합)에 따른 결과물로도 봐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대답이었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슈퍼마켓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 “인플레 흐름, 중간선거 변수 안돼…美 CPTPP 가입, 中 관세↓ 도움될지도”

다음 달 8일 앞둔 미국 중간선거가 이런 흐름을 변화시키진 않으리라는 것이 달러 선임연구위원의 전망이다. 그 이유에 대해 “(독립적인 미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은 제외하고) 그나마 관건이 될 수 있는 건 재정정책의 향방”이라며 “현재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는 인플레이션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세금을 인상하려 하고, 반대로 공화당은 정부지출 감소로 대응하고 있다”며 “정부지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대세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줄일 여력이 많지는 않고, 증세는 정치적으로 합의가 매우 어려운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다수당이 바뀌어도 정책에서의 큰 변화가 없을 것이며,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통제 가능성도 작다는 지적이다. 결국 통제 불가능한 공급보다는 수요를 제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재정을 긴축하는, 이론적 ‘정공법’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진정시킬 기본적인 도구는 양적 긴축(QT·대차대조표 축소)을 포함한 통화정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의 실업률이 3.5%로 매우 낮은데,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4.5%까지는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하지만 그것이 충분하냐, 더 높아져야 하느냐에 대해선 미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현재 가장 큰 논란거리”라고 했다.

그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자유무역(Free Trade)’ 역시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내가 자유무역 신봉자이긴 하지만서도, 미국이 유럽과의 무역협정이라든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면 인플레율을 낮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중국 수입품 절반 정도에 25%의 관세를 매기고 있는데 이를 낮추는 것 역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블룸버그

◇ “韓, 경제 관리 잘되는 국가…외환위기 가능성 낮아 보여”

미국 입장에서도 억제책이 마땅치 않아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은 당분간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내가 보기에 한국은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잘 관리되고 있는 나라”라면서 “오히려 어느 정도 원화 가치 하락을 내버려 두고 있다고도 본다”고 말했다.

최근 블룸버그에서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의 가치 하락이 아시아 시장의 자금 유출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상황에서 특히나 한국·태국·필리핀이 취약하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것과 관련해선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 세계은행(WB) 재직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를 접한 적 있다는 그는 “25년 전 금융위기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기우이자 언론 특유의 내러티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부 개발도상국들의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가 세계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잠비아나 스리랑카 같은 아주 취약한 소규모 경제권에서만 발생했을 뿐 대규모 신흥 시장에선 발생하지 않았다”며 “그것이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의 운용 제어 능력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언급되고 있는 ‘통화스와프’는, 미국 내에서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 논제인 듯 했다. 그는 “통화스와프는 실제로 가동되지 않길 바라는 심리가 숨어 있는, 단지 안정감을 위한 수단으로, 미국 입장에서도 별 손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단 미 연준 의사결정의 디테일(자세한 것)까지는 모르기에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현재 체결돼 있는 한중 통화스와프에 대해 미국이 철회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미·중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한 데다가, 한국과 중국의 무역량을 고려할 때 스와프 협정을 맺는 것이 기본적으로 현명한 전략이라는 걸 미국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확률이 낮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글로벌 위기의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정책당국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인플레를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준비가 언제든 돼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줄 수밖에 없다”며 “나중에 경기 침체가 왔을 때 어느 정도의 재정적자(확장적 재정정책)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반대로 경기가 괜찮았을 때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긴축을 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 연준 역시 과거처럼 미국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며 “향후 세계가 정말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게 된다면, 그들(미 연준)이 너무 과도하게 (인상을) 단행했으며 이런 파급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의 모습. /워싱턴DC=박소정 기자

◇ 데이비드 달러(David Dollar)는 누구?

미국 다트머스대 중국어 및 중국역사학 학사, 뉴욕대 경제학 박사 등을 거친 데이비드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2009~2013년 미 재무부 소속으로 중국 베이징에 파견돼 경제·금융 특사로 일한 적 있는 경제 전문가이자, 미국 내 손꼽히는 중국통이다. 세계은행(WB)에서도 20년간 근무한 이력이 있으며, 중국 담당 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