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병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가결 시키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과잉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격리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관리법)을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정부여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도 야당은 '농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상임위 의결을 강행했다.

관가에서는 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을 이재명식 '기본소득'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물 중 농사가 가장 수월하다는 쌀 농사만 지어도 기본 생계는 유지할 수 있도록 남는 쌀은 모두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다.

◇ 양곡관리법으로 포문 연 이재명식 입법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각자도생을 넘어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기본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쌀값 안정'(양곡관리법)을 약속했다.

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쌀값 변동에 따라 한해 소득이 결정된다. 정부가 직불금 형태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전해주긴 하지만, 쌀 농사 작황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특히 풍작으로 쌀 생산이 확 늘면 산지 쌀 가격이 폭락해 수입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과잉 공급된 쌀은 모두 정부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시키자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정부여당에서는 이 같은 양곡관리법을 농민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한다. 시장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쌀이 남아 돌아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자가 재배 작물을 전환해 수급을 맞추도록 하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농식품부도 "정부가 의무 매입을 하도록 하면 생산자 입장에선 굳이 재배 작물을 전환할 요인이 사라진다"며 "쌀 과잉 공급이 구조화되고, 쌀값 약세 상황이 고착될 것"이라며 양곡관리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전국 쌀 생산량 추이. /통계청 제공

현재 한국은 생산량 대비 소비량이 크게 줄면서 쌀 과잉 공급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올해 수확을 시작한 쌀도 25만톤 가량이 초과될 것으로 전망되자, 정부는 약 1조원을 투입해 과잉 공급량의 2배가량인 45만톤을 격리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도 쌀 37만톤을 격리하는데 7900억원을 썼다.

쌀 의무 매입은 이 같은 과잉 생산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로 시장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초과생산량이 매년 증가해 2030년에는 64만t으로 공급과잉구조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간 쌀 시장격리에 투입되는 예산은 2026년 1조원을 넘어서고, 2030년에는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 與 "민주당 정권 때는 안하더니"

국민의힘 내에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있을 때는 추진하지 않더니, 야당이 되자 돌변해 쌀 의무매입을 요구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에도 쌀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와 함께 시장 격리 요구가 제기됐으나, 문재인 정부는 수확기를 지나는 시점까지 시장 격리 여부 결정을 미루고, 해를 넘기고 올 해 1월에야 초과 생산량 27만톤 중 20만톤만 시장 격리 조치를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현재 쌀값 폭락은 문재인정권 농정실패 결과"라며 "(양곡관리법은)민주당의 농정 실패를 덮고 이재명 대표를 구하기 위한 정략적 법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형평성 논란도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전체 농가 수 103만1210 가구 가운데 쌀(논벼) 생산·판매 농가 수는 38만9572 가구로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농업예산 중 상당 부분을 이들에게만 투입하는 것은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쌀 말고 다른 작물에도 이와 같은 가격 안정화법을 도입할 것이냐?"라고 따지기도 했다.

예산정국 협상용 카드란 관측도

일각에서는 야당이 양곡관리법을 연말 예산안과 법안 처리를 놓고 벌어질 여야 충돌 국면에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긴축재정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이재명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2023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한 상황에서 양곡관리법과 해당 예산을 맞바꾸기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외에도 기업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을 놓고도 정부여당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초연금과 출산보육수당 및 아동수당 확대도 이번 정기국회 내 추진한단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세제개편안과 예산안과 각종 법안을 놓고 여야의 입장차가 선명하게 갈리고 있다"면서 "연말 국회에서 여야 협상에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여야간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모두 단독으로 처리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이의를 달아 국회로 돌려 보낼 수 있는 거부권을 보장한다. 다만 국회가 돌려받은 안건은 재정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현 21대 국회(299명)는 민주당 소속 의원이 169명, 무소속 중 민주당 성향 의원이 5명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초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