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오는 1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대응하고 1400원대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11월까지 연속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연말 기준금리는 3.25~3.5%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채권시장 “한국은행, 10월에 빅스텝 간다”

조선비즈가 9일 국내 증권사 거시경제·채권시장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모두 한국은행이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2.5%에서 연 3%로 0.5%p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인상의 주된 배경으로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억제도 있지만,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따른 한·미 정책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차원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현재 미국의 정책금리는 3.0~3.25%, 한국 기준금리는 연 2.5%로 한·미 금리가 75bp(1bp=0.01%포인트) 역전된 상황이다. 환율 안정 측면에서도 큰 폭의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연준의 금리인상 움직임에 속도가 붙은 데다 최근에는 외환시장 방어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빅스텝(0.5%포인트 금리인상)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달까지 4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한 뒤 11월에도 추가로 금리를 0.5%p 올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 역전폭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백 연구원은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발언을 보면 미국과의 정책금리 역전폭을 100bp~125bp 이상으로 벌어지는 것을 경계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빅스텝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을 돌파하는 등 외환시장 불안이 커진 점도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고, 이에 따른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 확대로 과거 역전기와 다른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원화 절하 압력을 덜어내야 하는 압력이 커졌는데, 지금처럼 강달러가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기준금리 격차를 줄이는 대응이 현실적이다”라고 설명했다.

100달러짜리 미국 달러화 지폐들. /UPI 연합뉴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당장 대규모 무역적자, 대중 수출 부진 등을 (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역환율 전쟁 성격의 (금리 인상) 대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주요국 중앙은행은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촉발한 달러화 강세 여파로 급락한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역(逆)환율 전쟁’에 돌입했다.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 압력과 기대인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내년 1분기까지 5%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가 이미 올 여름 정점을 통과했다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물가 수준이 5%대로 높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도 10월에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은현

◇ 11월도 ‘빅스텝’ 전망 우세…”경기침체 대비해야” 신중론도

전문가 모두 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금통위가 열리는 11월까지 금리인상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추가 금리 인상 수준에 대한 전망은 0.25%p와 0.5%p으로 나뉘었다. 10명 중 6명은 한국은행이 11월까지 연속으로 금리를 0.5%p 올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준이 내년까지 금리를 4.6% 수준으로 올린 뒤 고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시사한 만큼, 한국은행도 연준과 100bp~120bp 수준의 금리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11월에도 큰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임재균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 약세가 향후 수입물가를 밀어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도 10월에 이어 11월까지 기준금리를 0.5%p 인상할 것”이라며 “연말 기준금리는 3.50%가 될 것이며, 내년에도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나머지 4명은 연말로 갈수록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1870조원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 등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이 11월에는 금리를 0.25%p 인상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리인상기는 이제 후반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그동안 금리를 큰 폭 인상하면서 성장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점점 금리를 올리기 어려워질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현재 연 2.5%에서 3.0%로 0.5%p 인상될 경우 가구 이자부담은 추가 14조5835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자부담이 늘어나면 소비가 줄고, 이로 인해 경기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