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정부의 원유(原乳·우유의 원재료) 가격 결정 방식 개편에 강력 반발해왔던 낙농가가 지난 2일 정부와 협의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지난달 서울우유의 원유 가격 인상이 지목된다. 서울우유의 독자적인 원유 가격 인상이 정부 지원으로 생산비를 보전받았던 낙농가에 ‘지원 축소의 신호탄’으로 해석됐다는 분석이다.

원유 공급자인 낙농가와 수요자인 유업체가 자율적으로 시장 수요, 생산비 등을 고려해 별도 정부 지원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격을 정했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별도의 가격 협상이 확산되면 낙농업계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점차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와 낙농가의 협의가 진전되면서, 올해 오른 원유 생산비가 낙농진흥회의 원유 가격에 얼마나 반영될지 주목된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우유를 구매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8일 서울우유의 독단적인 원유가 인상과 관련해 "낙농산업의 미래를 위해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농가·유업체에 정책지원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배제 방침을 밝혔다. 2022.8.19/뉴스1

◇내년부터 마시는 우유, 버터·치즈·분유용 우유 가격 차등

6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일 서울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 주재로 생산자, 수요자, 소비자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원유가격 결정방식 개선 ▲낙농진흥회 의사결정구조 개편 등 정부안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용도별 차등 가격제’가 도입된다.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흰 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와 치즈·아이스크림·버터·분유 등을 만드는 가공유로 나눠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적용하면 가공유는 음용유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야 한다. 생산량을 기준으로 195만톤(t)에 대해서는 1ℓ 당 1100원인 음용유 가격을 적용하고, 추가로 생산되는 10만t에 대해서는 이보다 저렴한(1ℓ당 800원) 가공유 가격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원유 가격은 낙농진흥회를 통해 낙농가의 생산비 상승을 반영하는 생산비 연동제를 적용했다. 낙농진흥회를 통해 낙농가와 거래하지 않는 서울우유 등 일부 기타 유업체들도 낙농진흥회에서 결정된 원유 가격을 따라 매년 가격을 인상해왔다. 낙농가와 유업체 간 교섭력에 차이가 있는 등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원료 가격 인상분을 그대로 보전하는 현 제도의 부작용으로 정부 예산은 낭비되고 국내산 원유 자급률은 지난 20년간 77.3%에서 48.1%로 떨어졌다. 가격이 싼 외국산 우유를 수입해 가공유 원재료로 쓰는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시장 수요를 반영하도록 이번 기회에 원유 가격 결정 방식을 바꿔 국내산 원유의 자급률을 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이를 문제로 지목한 농식품부는 지난해 8월부터 원유의 용도별 가격 차등제를 골자로 하는 낙농 산업 발전 방안을 추진해왔다. 공급 과잉으로 우유는 남아도는데,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 기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책이다. 낙농가는 농가 소득 감소를 우려해 반대해왔고, 유업체는 가공유 생산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정부안을 지지했다.

농식품부와 낙농 생산자 단체장들이 협의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맹광렬 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장, 정황근 장관,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농식품부 제공

◇농업 선진국 式 원유 가격 결정 구조 첫 도입

농식품부가 제시한 안을 낙농가에서 극적으로 받아들인 주요한 배경으로 서울우유의 독자적인 가격 결정이 꼽힌다. 서울우유는 백색시유(흰우유) 기준 시장 점유율 41.3%로 1위 사업자이며, 낙농진흥회를 통해 원유를 사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체 조합에서 구매한다.

원유의 공급자인 낙농가와 수요자인 유업체가 자율적으로 시장 수요, 생산비 등을 종합 고려해 정부 지원 없이 가능한 범위에서 가격을 정한 첫 사례라는 해석이다. 유럽연합(EU), 캐나다, 미국, 일본 등 대부분 낙농 선진국에서 유업체와 낙농가가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한국에서도 도입됐다는 것이다.

그간 서울우유는 비록 낙농진흥회로부터 원유를 구매하지 않았음에도 낙농진흥회가 정한 가격을 따랐다. 사실상 원유 매입가격을 통일해왔던 것이지만, 이 관례를 이례적으로 깼다. 정부는 앞으로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되더라도 서울우유에 의무 적용하지는 않도록 할 예정이다. 다른 유업체들은 서울우유와 달리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로부터 원유를 구매하기 때문에 제도 개선 이후 낙농진흥회 결정에 따르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남은 과제는 올해 낙농진흥회의 원유 가격 결정이다. 2020년 이월된 생산단가 인상분 18원에 더해 올해 상승한 생산단가 34원까지 합친 52원에 ±10%(47~58원)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우유가 낙농가에 지급하는 원유 가격을 1ℓ당 58원 올려주기로 한 것에다, 낙농가가 원유 용도별 가격차등제 도입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원유 가격 인상 폭을 최대로 키워달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단 낙농단체와 1차적인 협의는 성공했지만, 향후 구체적인 부분은 더 정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며 “가공유, 음용유의 가격을 각각 얼마로 할지 등의 논의를 해야 하므로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