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조업 재고율(출하 대비 재고 비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 직격탄을 맞은 2020년 5월 이후 26개월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지속되고 있고, 주력 산업인 반도체 경기가 조정 국면을 맞고 있어서다. 특히 반도체는 단가 하락, 출하 감소 등이 겹치면서 재고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서의 재고 증가는 가동률 하락, 투자 감소 등 전방위적인 경기둔화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비 위축까지 더해지며 하반기 경기둔화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제조업 재고율(출하 대비 재고 비율)은 125.5%로 전달보다 1.3%포인트(p) 상승했다. 6월 제조업 재고율도 전월 대비 10.3%p 급증했는데 이보다 더 재고가 쌓인 것이다. 7월 제조업 재고율은 2020년 5월 127.5% 이후 최고치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재고율 상승은 출하 속도가 재고 누적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7월 제조업 출하는 전월대비 0.4% 증가한 데 비해, 재고는 1.4% 증가했다. 지난해 7월과 비교해서는 출하가 2.4% 감소했고, 재고는 17.2% 급증했다.
품목별로 보면 내수 시장에서는 반도체 출하가 전월대비 8.9% 감소했고, 기계장비와 식료품이 각각 2.2%, 2.3% 줄었다. 수출에서는 반도체 출하가 전달보다 27.8% 급감했다. 아울러 통신·방송장비가 19.1%, 기타운송장비가 5.9% 감소했다.
반도체의 경우 내수와 수출 출하가 모두 급감하면서 재고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달 반도체 재고는 전월 대비 12.3% 증가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80.0% 증가한 수치다. 화학제품(2.1%), 기계장비(1.7%)도 재고가 증가했다. 국내 주요 제조업의 재고가 쌓이면서 재고율은 125.5%를 기록했다.
이처럼 재고가 쌓이면 기업들은 가동률을 낮춰 생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실제로 지난달 반도체 생산은 3.4% 감소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재고 누적에 따른 생산량 조정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로 인해 전체 제조업 가동률은 전월대비 1.2%p하락한 75.2%를 기록했다. 지난 5월(75.6%)의 연중 최저치를 갈아 치운 것이다.
통계청은 이 같은 반도체 재고 누적 심화의 핵심 원인으로 중국의 봉쇄 조치를 꼽았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중국의 봉쇄 조치로 (반도체)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며 "스마트용품 등 전반 산업의 수요가 둔화하면서 출하가 부진하며 재고가 쌓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주력 업종인 반도체 부문의 수요 둔화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유로존(EU) 등 주요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통화 긴축에 나섰고,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줄이면서 반도체 수요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지난 23일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전망치)을 지난 6월 발표한 16.3%에서 13.9%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도 5.1%에서 4.6%로 수정했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의 올해 성장률을 18.7%에서 8.2%로 대폭 내렸다. 메모리 반도체의 내년 성장률은 0.6%로 '0%'대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업황 부진은 수출입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관세청이 지난 21일 발표한 이달 1~20일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5% 하락한 62억7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9%에서 18.7%로 2.2%p 줄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글로벌 경기 하방 압력에 따른 수출증가세 둔화와 반도체 단가 하락, 제조업 재고 증가를 생산 회복 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규제 혁파, 투자 지원 확대 등 기업 투자 촉진을 위한 다각적 지원 노력을 지속하면서 수출 대책 등을 차질없이 준비·이행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