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1345원까지 치솟으면서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외환당국이 서둘러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환율 폭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에 유럽과 중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맞물리면서 원화 가치는 2009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추락했다.

문제는 외환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강(强)달러 흐름이 지속되면서 환율이 빠른 시일 내 1차 저항선인 135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외국인 자금유출을 부추기고, 금융불안과 무역적자 규모를 키우면서 한국 경제의 복합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관계자가 달러를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 달러화 독주 가속…원화 가치 금융위기 수준으로 하락

25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 23일에 비해 3.4원 내린 1342.1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고점을 경신한 전날(1345.5원)보다는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연일 1340원 안팎에서 움직였는데, 이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약 13년 만에 처음이다.

전 세계적인 강달러 현상이 환율 급등을 주도하고 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에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 가치도 연일 상승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1일 105.336에서 22일 108.981까지 뛰었다. 이달 들어서만 약 3% 올랐다. 23일(현지시각) 발표된 미국 신규주택판매 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면서 달러화 강세도 다소 주춤했지만, 여전히 108선을 기록 중이다.

연준 주요 인사들이 최근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9월에도 공격적인 긴축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긴축 우려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이번주 예정된 잭슨홀 회의를 앞두고 시장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오는 26일 잭슨홀 회의에서 긴축 의지를 재확인하고, 남은 세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의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 천연가스 해상 파이프라인 육상 시설 위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 "유럽 에너지 위기 악화시 원·달러 환율 1400원도 가능"

유럽과 중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럽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최근 폭염, 가뭄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의 유지 보수를 위해 이달 말부터 가스 공급을 3일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힌 이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전년 대비 약 1000% 폭등했다.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최근 유로화 가치는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23일에는 유로화와 달러화의 가치가 동일해지는 '패리티(parity)'마저 깨졌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달러화 강세 흐름은 연준의 태도 변화와 유럽 경제의 바닥 인식이 확인되어야만 바뀔 것으로 보이는데, 유난히 유럽 거시 경제의 악재가 누적되는 상황"이라며 "현재 외환시장은 강달러, 경기 침체, 무역적자 누적에 속수무책인데 위기를 반영한 원·달러 환율은 1400원까지도 무주공산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aT센터 농산물수급종합상황실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달러화 강세를 막을 만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원화도 약세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이 대외 악재에 반응해 오버슈팅(일시적 급등)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율 상단을 1370~138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유럽의 천연가스 수급이 악화되고,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이 심화될 경우 환율도 1400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 기조로 전환하려면 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 유럽의 에너지 공급 개선, 중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 전환 등이 필요하다"며 "이는 연말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원·달러 환율이 적어도 연말까지는 1300원을 상회하는 높은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란 설명이다.

◇환율 폭주로 물가 안정 늦어질 수도…정부 "리스크 관리에 최우선"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평가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화 강세 현상에 편승해 당분간 추세적인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미 달러화는 연준의 정책 기조와 미국과 유럽의 체력 차이를 반영해 강보합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와 위안화 약세도 원화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1차 저항선인 1350원을 돌파할 경우 1365원까지 상단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밀어올려 물가를 자극하고, 무역수지 적자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누적 무역적자 규모는 255억달러를 기록했다. 원화 약세로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면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8월 1~20일 무역수지는 102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청와대와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리스크 관리'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열린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최근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환율이 큰 폭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가격의 증가로 무역수지 적자도 확대폭이 늘어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 현상과 관련해서는 "금융위기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글로벌 달러 강세 등 대외 여건에 편승해 역외의 투기적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경각심을 갖고 모니터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