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 축소 방침으로 가스 가격이 1년 새 10배 이상 급등하는 등 올겨울 에너지 대란 우려가 커졌다. 천연가스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각국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건 유럽 국가들이지만,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이라는 파편에 당하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가스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과 경기 활력 둔화, 무역수지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이명박(MB) 정권 시절 지분 투자한 호주 프렐류드(Prelude) 가스전이 효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가스전에 대해 필요 시 지분 물량을 국내에 우선 도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갖고 있다. 투자 성과 측면에서도 2020년까지는 적자를 냈지만, 작년부터 흑자로 돌아선 상태다. 정부로선 수급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한때 비판받던 자원외교에 관한 재평가 목소리가 나온다.

호주 프렐류드 가스전의 해양 부유식 액화플랜트(FLNG). / 조선 DB

◇ 콜옵션 행사로 우선 물량 확보…작년부턴 흑자 전환

24일 정부에 따르면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가스공사는 국내 LNG 비축 물량 확보를 위해 조만간 호주 프렐류드 가스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할 예정이다. 한국은 지난 2월과 5월에도 콜옵션을 통해 이 가스전에서 생산된 LNG를 국내에 먼저 들여온 바 있다.

도입 물량은 연간 기준 100만톤(t) 안쪽으로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천연가스 물량 확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크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한국의 연간 LNG 수입량은 3000만t 이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동절기 에너지 수급 상황에 따라 연말 또는 내년 초에도 콜옵션을 추가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프렐류드 가스전은 호주 북서부 육지에서 470㎞ 떨어진 곳에 있는 해저 가스전이다. 이곳에 떠있는 세계 최대 해상플랜트 ‘프렐류드 FLNG(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 facility)’는 천연가스를 해양에서 시추한 뒤 액화·저장·하역까지 할 수 있는 부유식 LNG 설비다. 가스전 개발은 MB 정부 때인 2011년 글로벌 정유회사 로얄더치셸 주도로 시작됐다. 한국은 15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다.

지분 투자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가스 첫 생산은 목표(2018년 8월)보다 1년가량 늦은 2019년 6월 이뤄졌고, 가스전이 가동되자마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수요가 급감했다. 우리 정부는 프렐류드 가스전에서 2019년 251억원, 2020년 1137억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분위기가 180도 변한 건 각국 봉쇄 조치가 서서히 풀린 작년부터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억눌렸던 소비·투자·생산 활동이 재개되면서 가스 수요가 폭발했다. 올해 들어서는 러시아가 서방 세계의 제재에 대한 맞불로 유럽행 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LNG 물량 확보 전쟁이 더 치열해진 상태다. 한국의 프렐류드 가스전 영업이익은 지난해 65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783억원이다.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 천연가스 해상 파이프라인 육상 시설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 AP 연합뉴스

◇ “해외 자원 개발 결국엔 국익 연결…길게 보고 접근해야”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대란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 애물단지에서 효자로 탈바꿈한 프렐류드 가스전 사례가 한국 정부에 공급망 관련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자원 확보가 무역수지 개선은 물론 다른 나라의 자원 무기화 행보에도 대비할 힘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시절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해외 자원 개발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했고, 노무현 정부는 아프리카·몽골 등의 해외 광산 비중을 높이면서 자원 외교에 나섰다. MB 정부는 자원 공기업을 대형화해 석유·가스·광물 확보에 공격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MB 정부 이후로는 자원 외교가 동력을 상실했다. 해외 자산 손실이 커지면서 자원 외교에 대한 여론도 나빠졌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해외 자원 개발 백지화 방침을 정하고, 국내 공기업의 모든 해외 광물 자산 매각을 결정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2년 219개이던 해외 광물자원 개발사업은 2021년 94개로 크게 줄었다.

글로벌 공급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공급망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자원 확보 여부가 한 국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자리매김한 만큼, 자원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자산이라고 판단되면 국익 차원에서 적극 확보한다는 게 윤 정부 입장이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해외 자원 개발은 길게 보고 접근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정부는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국내 산업계에 꼭 필요한 자원이라고 판단하면 반드시 투자하거나 확보한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