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비율을 현재 6~16%에서 20~30%로 확대하자는 국민의힘 법안에 대해 정부가 반대 뜻을 표명할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기획재정부 내부에서 해당 법안에 따른 세수 감소분을 추계해본 결과 7조원가량으로, 윤석열 정부 첫 세제 개편안에 담긴 법인세 감세 규모인 6조8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여당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재정 건전성 회복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윤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이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회 세법 심의 등에서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반도체 특위)의 세액공제안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표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가 바래지지 않도록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국민의힘 측이 물밑에서 조율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재정건전성 회복과 경제 안보를 위한 핵심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정부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는 반응도 나온다.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8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 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 “세수 감소 규모, 6조8000억원 넘어설 것”

8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2일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가 발표한 대로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비율을 확대하면 발생할 세수 감소분은 7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윤 정부 첫 번째 세제 개편안에서 발표한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인 6조8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감세가 예상된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지난달 21일 발표된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세수는 총 13조10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법인세가 전체 세수 감소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당 반도체 특위가 제안한 시설투자 세액 공제율이 적용될 경우 정부 세법 개정안으로 인한 세수 감소액의 절반 이상인 약 7조원의 조세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재정 건전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의 법안”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가 발표한 활성화 법안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과 조례특례제한법 개정안으로 나뉜다. 이 중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는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 기한을 2030년으로 연장하고, 현행 6∼16%인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20%·중견기업 25%·중소기업 30%로 각각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과세연도 투자 금액이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규모 등을 초과할 경우에는 5%포인트(p)를 추가 공제해준다.

또 기업의 맞춤형 인력양성을 위한 계약학과 운영비를 연구인력 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고, 기업이 대학 등에 중고 자산을 무상 기증하는 경우 기증자산의 시가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법인세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기술자의 유입을 위해 조건을 맞춘 외국인 기술자의 세 감면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0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뉴스1

◇ 尹 “반도체 국가 경제 안보 관점서 육성”...‘재정 건전성’ 충돌

여당 반도체 특위안은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나온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지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3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해 현행 6~10% 수준인 대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중견기업 혜택 수준인 8~12%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또 국가전략기술 적용 범위도 넓히기로 한 바 있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이번 반도체 특위에서 나온 내용은 주로 일부 반도체 대기업에 집중되는 세제 혜택이라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더욱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면서 “야당에서 공격하는 법인세율 인하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재정당국인 기재부는 대규모 세수 감소 우려에도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 제안에 반대 의견을 낼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 때문이다. 기재부로서는 재정 건전성 회복을 경제정책 1순위에 올려놓고 있는 윤 정부 국정과제와 경제 안보를 위한 첨단산업 육성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도체는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가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육성·보호하겠다”고 선언한 산업이다. 윤 대통령은 육성·보호의 울타리가 될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산업특별법)’ 시행(8월 4일) 일정에 맞춰 국가첨단전략산업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신설하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지난 6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는 이례적으로 반도체 특강을 열었고, 5월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005930)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또 윤 대통령은 반도체 인재 양성에 굼뜬 교육부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업계 불만을 달래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이 국가적 과제가 되는 분위기이다 보니, 기재부로선 엄청난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법안에 대해 드러내 놓고 반대 입장을 나타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 지원 사업이 국가 과제로 추진되고 있지만, 개별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세제 개편안에 나온 방안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이 기재부 내부에서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적정 수준의 지원 방안에 대한 의사소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