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5%대로 늘어난 수준인 640조원 안팎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연 평균 지출 증가율(본 예산 기준) 8.7%에 비해 반토막 난 수준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 ‘확장’에서 ‘건전’으로 전환된 재정 기조가 이번 예산안 편성에 본격적으로 담기게 된다.

최근 정부 본예산 세부 심의에 돌입한 예산당국은 불요불급의 재량 지출을 삭감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특히나 문재인 정부에서 역점으로 추진됐던 각종 국정 과제들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추경호(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달 예산실 각 실무과 대상 1·2차 심의를 마치고, 최근 세부 논의에 돌입했다. 이달 말 ‘2023년 예산안’ 편성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2일까지 확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규모는 ‘전년 대비 5%대 인상’ 원칙을 바탕으로 640조원 내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본예산 상승 폭인 ▲2018년 7.1% ▲2019년 9.5% ▲2020년 9.1% ▲2021년 8.9% ▲2022년 8.9% 등보다 대폭 줄어든 셈이다.

이를 위해선 전방위적인 사업 축소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기재부는 재량 지출의 최소 10% 이상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예산의 재량 지출 규모를 기준으로 10%를 따져보면, 30조원 이상에 달한다. 그 외 의무 지출이나 계약에 따른 경직성 지출 등에서도 최대한 아낄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이은현

◇ 지역화폐·코로나 지원금 등…'보편 지원’ 성격 사업 타깃 될 듯

전반적인 지출 구조조정 작업 가운데서도, 특히나 문재인 정권에서 이뤄진 ‘보편적 지원’ 성격의 각종 사업들이 삭감 우선순위에 놓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나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두달 연속 6%대로 치솟는 상황을 두고 유동성 급증이 한 요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보편적 재정지원 사업의 재검토나 효율화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지자체)마다 유행처럼 번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이 삭감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부산 ‘동백전’, 대전 ‘온통대전’ 등이 대표적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때 “국책 연구기관(한국조세재정연구원)마저 경제 효과가 없다고 진단한 현금 살포성 재정중독 사업”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도 있다. 올해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총 30조원인데, 이 중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은 4% 수준이다. 이 때문에 6053억원 전액을 삭감한다고 해도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시장에 경기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인 경기지역화폐 사용을 장려하는 내용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한시 지출 사업 역시 내년도 예산에선 상당 부분 도려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본예산에도 코로나로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소상공인의 손실보상을 위한 예산이 1조8000억원 편성됐었다. 백신 구매·병동 확보는 물론, 입원·격리자의 안정적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생활지원비·유급 휴가비 지원 등을 포함한 코로나 대응 예산도 본예산에 포함된 바 있다. 이에 올해 질병관리청 예산안의 경우 2021년 대비 4배 이상이나 증가한 5조여원에 달했다.

노인일자리 등을 포함한 직접 일자리 사업 예산에도 메스를 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일자리 사업에 역대 최대 규모인 31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취업자 수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호조를 보였지만, 노인일자리나 청년 단기 일자리 등 질 낮은 재정 소요 일자리가 상당 부분 견인한 것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일었다. ‘내일채움공제’ 등을 포함한 고용 지원금 사업도 대폭 구조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22일 인천 송도 스마트시티 통합운영센터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연계 스마트시티 추진전략 보고대회'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 文 정부 상징 ‘한국판 뉴딜’도 대규모 구조조정 불가피

‘한국판 뉴딜’로 명명된 각종 사업 예산들도 타깃이 될 전망이다. 올해 뉴딜 예산은 약 33조1000억원으로, 총 1100여개의 사업으로 구성됐다. 당초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국비 160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으로 설계됐으나, 문재인 정부 역점 정책이었던 만큼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뉴딜 사업은 크게 디지털·그린·휴먼 등 세 가지 큰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이 중 ‘디지털 뉴딜’ 명목의 각종 사업 예산(9조3000억원) 재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정부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의 디지털 뉴딜 기조를 사실상 폐기하고, 민간에 신산업 혁신 주도권을 넘기는 방향성을 발표한 바 있다.

뉴딜펀드도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상이다. 여당에서는 매년 뉴딜펀드에 투입되는 정부 재정 6000억원 예산의 전액 삭감도 거론하는 분위기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참여 정책형 뉴딜펀드’의 지난 6월 말 기준 누적수익률은 1.25%로 나타났는데, 예금보다도 낮은 수익률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20년 11월 열린 뉴딜펀드 투자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이 밖에 공공기관 예산도 삭감이 예고된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내년도의 경우 경상경비는 전년 대비 3%, 업무추진비는 10% 이상을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전 정권 사업 등을 포함해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깎는 중”이라며 “8월 말 발표될 정부 안보다는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전 정부 핵심 사업에 대한 삭감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