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새로운 형태의 통상 협력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이죠. 이럴 때일수록 통상교섭본부를 최고 실력자로 채워야 합니다.”
7월 28일 간담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기존 다자주의 시스템 붕괴와 공급망 블록화 등의 글로벌 통상 질서 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선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그 일환으로 스위스 제네바대와 의기투합해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문에 국제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통상교섭본부 사무관급 직원을 제네바대에 보내 업무 역량을 키워주겠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제네바 현지 국제기구 관계자와 만나 지식을 나누고, 국제회의에도 참석해 견문을 넓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7월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영상회의실에서 '2022 공급망 장관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 제네바대 연계해 강의 듣고 국제기구 회의 참석

5일 산업부에 따르면 통상교섭본부는 제네바대와 연계한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론칭하기 위해 현재 제네바대 측과 논의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급망 재편 가속, IPEF 출범 등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분위기에 민첩하게 적응하고자 통상교섭본부 직원 교육을 강화하려는 취지”라며 “연내 구체적인 프로그램 내용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통상교섭본부의 제네바대 연계 교육은 학자 출신인 안덕근 본부장이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안 본부장은 산업부 내 어느 부서보다 국제 감각이 중요한 통상교섭본부의 직원 상당수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해외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특히 사무관 이하 저연차 직급의 해외 경험이 적은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 통상 리더를 육성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 강화를 지시했다.

제네바에는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국제표준기구(ISO)·유엔난민기구(UNHCR)·국제노동기구(ILO)·세계보건기구(WHO) 등 다양한 국제기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안 본부장이 제네바대를 교육 파트너로 점찍은 배경이다. 교육 대상자는 제네바대에서 WTO·ISO 등 여러 국제기구 관계자로부터 강의를 듣고, 국제기구 회의에도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교육 대상자 선발과 관련해 “특정 직무 군을 선발 우선순위로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며 “산업부뿐 아니라 타 부처에서도 수요가 있다면 함께 묶어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프로그램 내용을 확정한 상태는 아니다. 추후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공무원 교육 규정과 예산 등을 고려할 때 직원을 연 단위로 내보내는 장기 교육 론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제네바대 교육 프로그램 역시 우선은 1~2주가량 다녀오는 형태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안 본부장은 “출장비 가운데 불용 예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제네바대를 시작으로 더 많은 해외 교육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각국 대표단이 6월 17일(현지시각) 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에 들어가고 있다. / AP 연합뉴스

◇ 능력 위주 인력 재배치…“맨파워 극대화할 것”

안 본부장이 ‘통상교섭본부 엘리트 만들기’에 착수한 건 그만큼 국제 통상 분야의 지각 변동이 거세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통상 질서는 과거 냉전 시대 때처럼 외교·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작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통해 처음 공개한 IPEF도 겉으로는 인도·태평양 역내 국가 간 포용적이고 유연한 경제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IPEF에 대해 “미국이 인·태 지역 통상 새 판 짜기에 나서면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안 본부장으로선 본부 내 인력을 최정예로 짜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부가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마지막 청와대 신남방·신북방비서관으로 일한 김정회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상교섭실장에 선임한 배경에도 안 본부장의 강한 추천이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실장은 미국 보스턴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은 미국 변호사다. 청와대에 가기 전에도 통상교섭실장으로 일한 바 있다.

안 본부장은 김정회 실장 인사에 이어 조수정 과장과 안창용 과장도 각각 통상정책총괄과장과 FTA정책기획과장 자리에 재배치했다. 조 과장은 외교통상부 시절부터 통상 분야 주요 업무를 두루 거친 전문가다. 사우디아라비아 상무관으로 일한 적 있는 안 과장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딴 전문가다.

안 본부장은 “지난 정부까지 상황을 보면 통상교섭본부의 위상이 그 역할에 비해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는 듯했다”며 “한국의 이번 IPEF 참여를 계기로 통상교섭본부가 산업부 내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네바대 교육 협력은 그 시작점”이라며 “본부 직원 개개인의 맨파워를 극대화해 한국이 신통상 시대를 주도하게끔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