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25%로 0.5%포인트(p) 인상하면서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했다. 6%대로 치솟은 물가를 억제하고,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과 원화 약세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연 2.25%로 0.5%p 올렸다. 금통위가 일반적인 금리 인상폭인 0.25%p의 2배인 빅스텝(0.5%p 인상)에 나선 것은 한국은행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금통위는 4월(1.25%→1.5%), 5월(1.5%→1.75%)에도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는데, 이번 금리인상으로 3회 연속 금리인상이라는 새 기록도 쓰게 됐다.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2.7.13/뉴스1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연 2.25%가 된 것은 2014년 10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기준금리가 연 2.00% 이상 수준이었던 때도 2015년 2월이 마지막이었다. 한국 경제가 약 8년 만에 최고 수준의 금융긴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금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이날까지 기준금리를 여섯 차례, 총 1.75%p 인상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0년 5월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당시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하하는 ‘빅 컷’을 단행한 적은 있지만, 반대로 기준금리를 0.5%p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억제하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역전 등을 고려해 금통위가 전례 없는 빅스텝을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기준 6%까지 치솟았다. 6%대 물가는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8년 11월 이후 24년 만이다. 시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공급망 차질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중국 봉쇄, 고환율,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등이 맞물리면서 7~8월까지 물가상승률이 6~7%에 육박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은 지난달 3.9%까지 뛰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임금인상 경로를 통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한국은행은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확산과 장기화를 방지하는 데 통화정책의 주안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은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공격적인 금리인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금통위가 빅스텝은 물론 3회 연속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든 이유로 꼽힌다. 연준은 지난 3월 정책금리를 3년 3개월 만에 올린 데 이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빅스텝을 단행했고, 지난달에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했다.

자이언트 스텝 이후 연준의 정책금리 목표 범위가 기존 0.75~1.00%에서 1.50~1.75%로 높아지면서 한국과 미국이 기준금리 상단이 지난달 연 1.75%로 같아졌다. 연준이 이달 27~28일(현지시각)로 예정된 FOMC에서 빅스텝에 나설 경우 미국 정책금리 상단과 우리나라 기준금리 상단이 뒤집히지 않고 연 2.25%로 유지된다. 다만 연준이 이달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경우 금리역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미 금리가 뒤집히면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금통위 입장에서는 한국과 미국간 금리 역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이번에 큰 폭의 금리인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기준금리 결정은 대체로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권시장 전문가 64%는 한은이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융투자협회는 “물가 안정을 위한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한국은행의 지속적인 금리인상 기조가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사상 첫 빅스텝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한은은 금통위 후 배포한 통화정책결정문에서 “높은 물가상승세가 지속되고 있고 광범위해졌으며, 단기 기대인플레이션도 크게 높아지고 있어 당분간 고물가 상황 고착을 막기 위한 선제적 정책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4%에 근접한 일반인 기대인플래이션율을 낮추기 위해 빅스텝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은은 형후 성장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 한은은 “국내경제는 소비 회복세가 이어지겠지만 주요국 성장세 약화의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되면서 금년중 성장률이 지난 5월 전망치(2.7%)를 다소 하회할 것으로 예상되며, 성장의 불확실성도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