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현대로템 공장에서 전동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현대로템 제공

공정거래위원회는 코레일, 서울교통공사 등 철도운영기관이 발주한 철도 차량 구매 입찰에서 낙찰예정자 결정, 물량 배분 등을 담합한 혐의로 현대로템(064350) 등 3개사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총 56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13일 밝혔다.

철도차량 제조업체의 수가 적어 폐쇄성이 짙은 철도차량 제작시장에서 수년에 걸쳐 발생한 담합을 적발한 것으로, 국가기간산업과 연계되고 경제적 파급력이 큰 교통 산업 분야에서 경쟁 제한 행위를 바로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제작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현대로템은 전장품 공급 협력업체였던 우진산전이 2010년 부산지하철 4호선 관련 경전철 차량을 제작·납품하자 우진산전을 잠재적 경쟁상대로 여기기 시작했다.

경쟁상대의 급부상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한 현대로템은 2013년 김포도시철도 열차운행시스템 일괄 구매설치 입찰 과정에서 우진산전과의 경쟁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해당 입찰건의 하도급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미응찰 또는 들러리 참여를 요청했다. 현대로템의 부품협력사였던 우진산전으로선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담합에 가담했다.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이 체결한 경전철 프로젝트 담합 관련 합의서. /공정위 제공

이후 현대로템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부산교통공사 등이 진행한 총 5850억원 규모의 철도차량 입찰 계약 6건을 수주할 수 있었다.

당시 현대로템은 고액 수주를 위해 2회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는 입찰에는 미응찰을, 복수의 업체 참여가 필수인 입찰에는 현대토렘이 알려준 가격으로 투찰하는 ‘들러리 참여’를 우진산전에 요구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담합 증거로 양사가 체결한 ‘프로젝트 합의서’와 ‘철도산업발전 협약서’를 확보했다.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의 담합 연대는 2017년 6월 당초 우진산전이 낙찰받기로 한 ‘진접선 50량 입찰’을 현대로템이 합의를 파기하고 낙찰을 받으면서 깨졌다.

이후 현대로템과 우진산전, 또 다원시스까지 3사간 입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철도 입찰 수주 단가는 계속 내려갔다. 현대로템이 시장을 독점하던 시기 1량당 11억6000만원 수준이던 전동차량의 가격은 2015년 이후 8억원대로 떨어졌다.

수주 계약별 철도 차량 1량당 가격 추이. /공정위 제공

저가 수주 문제는 각 업체의 수익률 악화와 협력업체의 부실로 이어졌다. 이에 철도차량 제조업체 간에는 저가 수주를 막고 수익성을 올렸으면 하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후 3사는 2019년 발주된 입찰의 물량을 사전에 배분하는 형식으로 담합을 했다.

그 결과, 우진산전은 3731억원 규모의 서울 5·7호선 신조전동차 336량 구매 입찰을, 다원시스(068240)는 코레일이 발주한 3821억원 규모의 간선형전기자동차 208량 구매 입찰을, 현대로템은 그외 3건 (총규모 1조550억원)의 입찰을 수주하기로 했다.

당시 우진산전과 다원시스는 2018년 발주된 간선형 전동차 150량 입찰을 두고 법적 분쟁 중에 있어, 현대로템이 양사를 따로 접선하는 방식으로 합의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현대로템은 자사를 ‘맏형’으로 칭하며 관계가 악화된 우진산전과 다원시스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같은 담합은 우진산전과 다원시스간의 법적 분쟁이 종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진산전이 수주받기로 한 ‘5·7호선 신조전동차 구매 입찰’에 다원시스가 발주처의 요청으로 참여하게 되자, 우진산전 임원은 불화에도 불구하고 다원시스 임원을 만나 들러리 참여를 약속받았다. 이후 우진산전은 다원시스의 들러리 투찰에 대한 대가로 양사 간 진행 중이던 법적 분쟁 관련 항고를 취하했다.

철도차량 입찰 담합 목록. /공정위 제공

2019년 12월 ‘GTX-A노선 운행차량 구매’ 입찰까지 이어진 3사의 담합 연대는 2020년 2월 신고를 접수한 공정위가 조사에 나서면서 종료됐다. 2019년 2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입찰 담합 건수는 5건, 수주 계약 규모는 1조8101억원에 이른다.

2년 넘게 조사를 진행한 공정위는 3사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입찰 담합과 물량배분담합 혐의를 적용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564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별로는 현대로템에 323억원, 우진산전에 148억원, 다원시스에 94억원 씩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폐쇄적인 철도차량 제작시장에서 수년에 걸쳐 발생한 담합을 적발·제재한 것”이라며 “일회 거래량과 거래 금액의 규모가 크고, 국가기간산업과 연계되어 경제적 파급력이 큰 교통 산업 내의 경쟁제한 행위를 시정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를 통해 국민의 핵심 교통수단인 철도차량 제작시장에서의 경쟁 질서가 회복되길 기대한다”면서 “교통시설과 관련된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 적발 시 국민의 안전한 교통환경 조성 및 공공예산의 절감을 위해 엄중하게 제재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