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돌입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향후 연준의 긴축 속도와 강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 중 하나로 집값 상승세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약 3분의 1을 주거비용이 차지하기 때문에 주택가격 상승세가 꺾이면 물가도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 ‘부동산 버블’ 제거 나선 연준

연준은 지난달 14~15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이는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최대 인상폭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집을 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모기지 금리가 다시 낮아지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수장이 나서서 집을 사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연준이 부동산 시장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뛰고, 이 과정에서 주택가격이 급락할 수 있기 때문에 집을 사지 말란 이야기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미국의 주택가격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정부의 경기부양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미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미국의 집값은 약 40% 뛰었다. 미국 주요 도시의 평균 주택가격을 측정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지난 3월 기준 연 20.6% 올랐다. 이는 관련 집계가 시작한 1987년 이후 최고 수준의 상승률이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 기준 미국의 총 주택자산은 20% 늘어난 27조8000억달러(약 3경60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기 기준 2013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가파른 주택가격 오름세는 미국의 소비자물가를 밀어올리는 주된 요인으로도 꼽힌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3%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의 경우 그 비중이 4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한 주거비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공사가 진행 중인 미국 주택. /트위터 캡처

◇ 연준 ‘빅스텝’ 이후 美 주택경기 둔화 조짐

이에 시장에서는 연준이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폭을 자이언트스텝(0.75%p 인상) 수준으로 확대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국제유가, 곡물가격 상승 등은 공급측 물가 상승 요인이라 금리인상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부동산 시장의 경우 통화정책으로도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주택가격 오름세는 연준이 지난 3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추진한 이후 둔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0.4% 올랐다.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3월의 20.6%보다는 소폭 낮아졌다. 집값 상승률이 전월보다 낮아진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이다. CNBC는 “미국의 집값 과열이 식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 잠재적 신호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미국의 주택 착공 건수도 전월 대비 14.4% 감소한 155만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약 1년 만에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도 금리인상으로 대출금리가 뛰면서 미국 주택시장이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매수자 대부분이 어마어마한 대출을 끼고 사야 하는 주택의 경우 금리 움직임에 특히 민감하다”고 했다.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기준 5.7%로 연초의 3.22%와 비교해 약 2.48%p 올랐다.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부동산 시장에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집값 상승률도 5월 이후 추가 조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은 “미국 주택가격은 공급 부족이 계속되면서 상승 흐름을 지속하겠으나, 구매 여력 저하 등에 따른 수요 감소로 상승세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은현

◇ 물가 고점 찍었나…5월 PCE물가 예상 하회

시장에서는 미국의 집값 상승률이 낮아지는 동시에 소비자물가가 고점을 찍는 시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일 발표된 미국의 5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물가 정점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PCE 가격지수는 연준이 금리정책을 결정할 때 활용하는 핵심 물가 지표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5월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대비 6.3% 상승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던 3월(6.6%)을 기점으로 상승폭은 둔화됐다. PCE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지난 30일(미국 현지시간) 뉴욕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수익률은 전일 보다 12.60bp(1bp=0.01%p) 하락한 2.976%에 거래됐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수익률은 전일 3시보다 14.20bp 내린 2.935%였다.

국내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집값 흐름이 하반기 연준의 긴축 강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며 “주택가격이 빠르게 안정되면 연준이 연속으로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연말 금리수준도 예상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강도 긴축으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 경기 침체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주택가격 조정 신호가 나타나면 연준도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소재용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들어 금리 급등과 맞물려 주택구매 능력이 후퇴하자 미국 기존 주택판매가 급격히 줄었다”며 “통상 주택시장의 위축은 실물경기와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급력을 행사할 수 있어 앞으로 붕괴 신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