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 부총리 보고 난생 처음 들어갔는데...부총리랑 셀카 찍었어요...”

지난 2014년 1차관을 마지막으로 기획재정부를 떠나 지난달 11일 8년만에 돌아온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50일을 보여주는 기재부 사무관의 한 마디다.

추 부총리는 보고를 받을 때 해당 업무를 담당한 실무진도 들어와서 자신이 맡았던 업무를 설명하고, 직접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는 보고가 끝난 사무관이 그냥 나가게 두지 않는다. 추 부총리는 그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다.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며 이들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런 그의 소통 행보는 기재부 직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에 앞서 영상으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참석하는 장관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기재부의 각종 정책 추진은 과(課) 단위로 이뤄진다. 기재부 과장은 정책 추진의 실무를 이끄는 간부들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를 이끈 김동연·홍남기 전 부총리 재임기에는 정책을 이끈 과장들이 각종 현안을 장관에게 보고하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부총리가 업무 보고를 받을 때는 해당 실·국의 책임자급인 실장, 국장만이 배석하고, 간부급인 과장도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였다. 실장이 없는 경제정책국, 경제구조개혁국 등 ‘국’ 단위 조직에서야 국장이 보고를 진행하면 과장도 함께 배석은 할 수 있었다. 예산실, 세제실 같이 덩치가 더 큰 ‘실’ 조직에서는 실장, 국장이 보고에 들어가면 과장조차 부총리와 직접 소통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경직적인 기재부의 보고 문화는 지난 2019년 1월에 터진 ‘신재민 전 사무관 폭로 사태’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폭로 내용에 따르면, 2017년 11월 적자국채를 발행한도까지 최대한 찍으라는 김동연 전 부총리 지시에 반대하는 보고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박성동 전 국고국장은 “부총리가 이 보고서를 보다가 집어던질 수 있으니, 클립을 튼튼하게 꽂아”라고 말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사무관이 보고에서 배제됐을 뿐만 아니라, 정책 실행에 대한 보고가 굉장히 수직적 위계를 통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이런 광경은 기재부가 과천정부청사에 있었을 2013년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기재부에서는 정책을 책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각종 보고서 작성의 책임을 지는 과장들이 부총리에게 직보를 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 이 때문에 기재부 장관 서울 집무실이 었던 명동 은행연합회관을 가면 보고를 위해 줄 서고 있는 기재부 과장들을 만나는 게 흔히 있는 일이었다. 뛰어난 보고서를 최초 기안한 사무관들은 과장들의 보고 자리에 배석하기도 했다.

2014년 국무조정실장으로 영전하며 기재부를 떠난 후 8년 만에 돌아온 추 부총리는 이 전통을 복원하기로 했다. 취임 열흘을 좀 넘긴 지난달 23일 열었던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추 부총리가 “보고서를 직접 기안한 사무관도 보고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무 최일선의 사무관들이 부총리의 피드백을 직접 듣고 업무에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데다, 업무에 대한 주인 의식이 생겨 동기 부여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보고를 마친 사무관들과는 셀카를 촬영한다. 그는 행정고시 25회로 입직해 금융위 부위원장, 기재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 국민의힘 의원 등 다양한 정부 부처와 정치권을 거쳤다. 그러다보니, 만났던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 사진으로 남겨 기억하고자 노력하기 위한 추 부총리만의 방책으로 전해졌다.

추 부총리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상은 사무관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재 기재부 내 실·국·과마다 추 부총리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가 과장급들의 얼굴과 이름도 모두 기억하고 친근하게 대한다고 한다. 한 기재부 과장은 “지금까지 약 20년간 기재부를 다니면서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부총리는 처음”이라며 “홍남기 전 부총리가 3년 동안 있었는데도 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했는데, 추 부총리가 ‘A 과장,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하느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가 업무 효율화를 위해 도입한 또 하나의 장치는 ‘타이머’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발언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비치하는 타이머를 기재부 내 회의에 도입한 것이다. 꼭 해야 할 중요한 말을 압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를 사용한다고 한다. 지난달 확대간부회의에서 추 부총리는 “보고는 형식보다 적시성이 중요하다”며 “불요불급한 회의나 자료 준비, 행사용・의전성 자료 최소화, 보고 방식 효율화 등을 통해 일하는 시간을 정책개발・품질 향상에 집중하라”고 당부했는데, 그 일환인 것이다.

추 부총리는 언론 대응을 활발하게 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재부 간부들에게 기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서 정책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고, 이 같은 분위기는 전 부처에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과장급 실무자들 말고 국장을 비롯해 실장, 차관보 등 1급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언론 대응을 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기재부 과장은 “아무래도 추 부총리가 기재부에서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던지라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다”며 “정치권을 경험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에도 더 능숙해져서 돌아온 것 같아서 오로지 기재부에서 일했던 수장보다는 함께 일하기가 더 든든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