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집에 모여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봤어요. 원래는 치킨을 세 마리 시키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 두 마리만 주문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5만원이 나가더라고요. 맥주 몇 캔 마시면 10만원은 금방입니다."

60대 가정주부 임연희 씨는 6월 2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과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 간 친선경기를 앞두고 치킨을 주문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다른 가족이 집에 놀러 와 총 세 마리를 시키려고 했는데, 결제 금액이 7만원에 육박한 것이다. 결국 임 씨 가족은 치킨은 두 마리만 주문하고 사이드 메뉴로 치즈볼을 추가했다. 그렇게 해도 총 금액은 배달비 포함 4만8000원이었다.

서민 음식의 배신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서 판매하는 냉면 한 그릇의 평균 가격은 이미 지난 4월 1만원을 돌파했고, 짜장면·피자·삼겹살 등 다른 주요 인기 메뉴 가격도 일제히 치솟아 많은 국민의 지갑을 더 얇게 만들고 있다. 가격을 인상한 판매자들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두바이유 등 국제유가가 배럴 당 80달러를 넘어서면서 시작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배달 음식비 등 서비스 부문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지난달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5%대로 튀어 올라 2018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작년보다 7.4% 급등한 외식 물가는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소비자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개인서비스 물가의 가파른 상승은 근로자의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진다. 서비스 가격 상승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늘어난 근로 소득이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의 한 거리에 배달 오토바이가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5월 외식 물가 상승률 7.4% '빨간

통계청이 3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4% 올랐다. 이는 5.6% 상승률을 기록한 2008년 8월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에 진입한 것은 2008년 9월(5.1%) 이후 처음이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작년 4월 2.5%를 시작으로 9월까지 2%대 상승률을 이어가다가 10월부터 3%대로 솟구쳤다. 올해 들어서는 3월에 4.1%를 찍으며 10년 3개월 만에 4%를 돌파했다. 4월에 4.8%를 나타낸 소비자물가는 불과 한 달 만에 0.6%포인트(p)나 치솟으며 5%대 시대를 열었다.

많은 국민이 최근 물가 상승 흐름에 힘들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림살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심화한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악재가 끌어 올린 에너지·원자재·곡물 가격 급등세가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전이되면서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주체를 고통에 빠뜨렸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달 생활물가지수(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1개 품목으로 구성)는 전년 동월 대비 6.7%나 올랐다. 2008년 7월 7.1% 상승한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많이 뛴 것이다.

1년 전보다 5.1% 오른 개인서비스 물가는 임 씨가 경험한 치킨 가격 급등의 실체다.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 5.1%는 2008년 12월(5.4%)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개인서비스 중에서도 외식 물가는 지난달 7.4% 치솟았다. 이는 1998년 3월 7.6%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치킨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10.9% 올랐고, 생선회도 10.7% 인상됐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음 달에도 5%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수준이 지속될 경우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3%를 나타낼 것"이라고 했다.

시민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 식용유 판매대를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 "하반기도 4%대 고물가 지속 예상"

최근 미국에서는 물가가 이미 3~4월에 고점을 통과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덩달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도 커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물가 상승률이 7~8월 중 정점을 찍은 뒤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고 하반기 내내 4%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은 곡물과 농산물 가격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이끄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업+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하반기 물가를 달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주요 생산국의 식량 수출 제한 등으로 국제 식량 가격이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이라며 "한국은 쌀을 제외한 식량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가공식품 가격과 외식 물가의 오름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분은 통상 4~7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된다. 국내 소비자물가가 내년 초까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는 점도 물가 장기 상승 가능성의 이유로 꼽았다. 기대인플레이션이란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 상승률로, 자기 예언적인 특성이 있다. 물가 상승을 예상한 근로자가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은 비용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실제 물가 상승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또 엔데믹(풍토병화)에 따른 소비 심리 회복이 수요 측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