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0여일 만에 내놓은 ‘긴급 민생 안정 대책’은 감세 카드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1세대 1주택자에 대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관련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돌려놓고,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 제 인정 기한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다. 고물가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경제 활동에 필수적인 품목들의 부가가치세 등을 감면한다. 총 6000억원에 이른 감세조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대대적인 법인·소득세 증세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감세를 통한 민생 경제 정책 행보를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의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먹거리·생계비·주거 등 3대 분야에서 주로 세금을 인하해 국민들의 물가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직무대행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을 통해 “어려운 물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민생 안정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출범 이후 서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10대 프로젝트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1세대 1주택자 보유세, ‘2020년 수준 환원’ 추진

우선 정부는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부담 완화를 내걸었다. 올해 3분기 중으로 1세대 1주택 실수요자의 보유세 부담을 부동산 시장 폭등과 이로 인한 공시가격 급등 이전 수준으로 돌려 놓겠다는 게 목표다.

올해 재산세와 종부세 모두 2021년 공시 가격을 적용해 올해 세금을 매기는데, 종부세의 경우 현재 100%로 적용돼 있는 공정시장가액비율(세금 부과하는 기준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의 비율)도 인하한다. 종부세는 세부담 강화 측면에서 공정시장가액을 지난해 95%, 올해 100%까지 올려왔다. 재산세의 경우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은 현재도 60%로 변함이 없다.

그래픽=손민균

정부는 올해 종부세 부과 시점인 11월 말 이전까지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이 확정돼야 하므로, 늦어도 그 이전엔 구체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재면 기재부 재산세제과장은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관계 부처의 협의도 필요한 사항이며 국회 법률 통과를 전제하고 후속 조치인 시행령을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대략적으로는 8월 말까지 조치를 완료하고 11월 고지를 준비할 한달 정도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7월 기재부가 발표할 세법 개정안과 시행령 개정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자세하게 담길 전망이다.

앞서 인사 청문회 국면에서 공시가격 현실화(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높이는 것)의 속도 조절을 예고했던 정부는 이번에는 ‘계획 재검토’라고 못박았다. 정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당시 71.50%인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오는 2030년까지 9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다. 이를 재검토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착수해 올해 안으로 보완 방안을 확정하고, 내년 가격 공시분부터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안 그래도 주택 시세가 올랐는데 재산세·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반영률조차 계속해서 올라 세금 부담이 배로 커졌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앞서 지난 3월 ‘2022년 공동주택가격(안) 열람 및 부담 완화 방안’을 통해 정부는 1세대 1주택자의 재산세·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을 산정할 때 작년 공시가격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19.05%, 올해 17.22%씩 잇달아 큰 폭으로 올랐는데, 이에 대한 거센 반발이 예상되자 선제적으로 정부가 “2021년 기준을 적용해 보유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그 외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 배제 인정 기한을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한다. 5월 말 이 같은 내용의 시행령을 입법예고하고, 이달 10일자로 소급적용한다. ▲조정지역 1주택, 비조정지역 2주택은 1~3% ▲조정지역 2주택, 비조정지역 3주택 8% ▲조정지역3주택, 비조정지역 4주택 이상 12%의 세율을 적용한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완화 관련 조치는 5월 중으로 마무리할 방침이다. 정부는 ▲일시적 2주택 비과세 요건을 2년으로 완화하고, 세대원 전입 요건 삭제 ▲다주택을 해소한 1세대 1주택 비과세 보유∙거주기간 재기산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20~30%P) 폐지 등의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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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식용유∙커피 등 수입품 세금 낮춘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중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고물가로 인한 서민 경제 활동에 밀접한 품목의 세금을 낮출 방침이다. 먹거리∙산업 원자재 가운데 14대 품목에 관세를 0%로 낮춘다. 최근 가격 상승 압력이 높은 돼지고기∙대두유(식용유)∙해바라기씨유∙밀∙밀가루∙계란 가공품∙사료용근채류 등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연말까지 관세를 0%로 낮춘다. 정부는 돼지고기의 경우 22.5~25%를 매기던 세율을 낮추면, 원가 인하 효과가 18.4~20% 정도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 파급 효과가 크거나 가격이 상승 중인 7개 산업 원자재도 관세를 0%로 없앤다. ▲나프타 ▲나프타용 원유 ▲산업용 요소 ▲망간 메탈 ▲페로크롬 ▲전해액첨가제 ▲인산이암모늄 등이 대상이다. 커피와 코코아원두를 수입하면 부가가치세를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해 원가를 약 9% 인하하는 효과를 낼 방침이다.

병이나 캔 등 개별 포장된 단순가공 식료품의 부가가치세 10%를 내년까지 면제해 가격 하락을 유도한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류, 단무지, 장아찌, 데친 채소류 등이 해당될 전망이다.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도 한 사람당 1만원씩 지급해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겠다는 방침이다.

밀가루와 사료매입비를 지원해 비용 부담을 경감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밀가루 가격 상승분의 70%를 지원하고, 제분업계가 20%를 부담해 밀가루 가격 인상의 효과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축산 농가의 사료 구매 비용을 저리로 지원할 방침이다. 농협의 무기질 비료 할인 판매 비용의 10%도 지원한다. 면세 농산물에 대한 공제 한도를 내년 말까지 10%P 상향해 식품 제조업, 외식업계의 식재료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 외에 당초 올해 6월 말 종료 예정이었던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30% 감면하는 정책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한다. 또 경유 유가 연동 보조금을 확대하고, 7월 까지로 정했던 지원 기한을 9월로 연장한다. 소비자 평균 데이터 사용량을 고려한 적정 수준의 5G 중간 요금제를 3분기부터 출시토록 유도하고, 저소득 가구당 최대 100만원의 긴급생활지원금을 신규로 지급한다.

그래픽=손민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