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출범 직후 발표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재정 건전성 회복 의지를 드러냈다. 53조원 이상의 초과세수 발생분 중 일부를 국채 상환에 활용해 문재인 정부의 국채 발행 남발로 50%를 돌파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다시 40%대로 떨궜다. '초과세수 53조원' 전망이 빗나갈 리스크가 남았지만, 윤 대통령으로선 가용 재원 발굴과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추경 자금을 마련하고 국채 발행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번 추경은 발표 전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다. 소상공인 지원에만 36조원 넘게 투입하려면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기간 추경을 10회나 편성하면서 연간 국고채 발행액을 출범 이전 대비 60% 이상 늘렸다. 여기에 최근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경고음이 커지면서 추경을 위한 국채 발행이 시중 금리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일으켜 내수 소비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윤 정부는 국채 발행 없는 추경안 발표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물가·금리 등 거시경제 안정과 소상공인 지원 확대라는 공존하기 힘든 미션에 제법 다가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정부는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3고(高) 악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정 건전성 강화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22회 한·중·일 재무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 국채 9조원 상환…국가채무 비율 50.1→49.6%

윤 대통령은 12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영업 제한 조치로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 피해 보상에 36조400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새 정부 첫 번째이자 올해 두 번째 추경안을 의결했다. 올해 연말 기준 53조3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초과세수, 세계잉여금과 기금 여유자금 등 8조1000억원, 지출 구조조정 7조원이 주요 추경 재원이다. 정부는 초과세수 중 9조원은 국채 축소에 쓴다고 밝혔다.

추경 편성 과정에서 국채 발행이 아닌 상환을 가능하게 만든 건 올해 53조원 이상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되는 초과세수다.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2년 연속 대규모 초과세수가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송구하다"면서도 초과세수 덕에 국채 발행 없이 막대한 추경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인정했다. 최 차관은 초과세수 53조원 가운데 법인세가 약 30조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국채 9조원 상환의 영향으로 국가채무가 1차 추경 기준 1076조원에서 1067조원으로 줄어든다고 전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1%에서 49.6%로 개선된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도 1차 추경 대비 2조3000억원 감소한 68조5000억원으로 바뀐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110조8000억원(1차 추경)에서 108조8000억원으로 감소한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추경 예산안 의결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 참석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새 정부 경제팀은 거시 경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소상공인 지원은 확대해야 하는 복잡한 난제를 안고 출범했다"며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추경안을 마련함에 따라 금리·물가 등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 "재정은 최후의 보루"…건전성 확보 지속한다

'국채 발행 없는 추경'이란 어려운 미션을 해냈지만,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거시경제 여건은 녹록지 않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심화한 공급난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긴축 행보,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이 각종 경기지표를 망가뜨리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을 키우고 있어서다. 한국만 해도 4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4.8%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300원에 접근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확장적 재정정책을 고수하면서 경기 위축에 대응할 우리나라의 재정 체력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2016년 516조9000억원이던 연간 국고채 발행 잔액은 지난해 843조7000억원으로 5년 만에 63% 급증했다.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원에서 2021년 956조원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같은 기간 36%에서 47%로 치솟았다. 문 정부는 올해 초 임기 마지막 추경을 실시하면서 국가채무 1000조원, 국가채무 비율 50%를 각각 넘겼다.

정부가 올해 2월 초 국회에 1차 추경안과 함께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재정총량 효과 및 관리방안'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23년 1182조8000억원, 2024년 1298조9000억원, 2025년 1415조9000억원으로 계속 불어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국가채무 비율이 윤 정부 마지막 해인 2026년 60%대로 올라설 수 있다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윤석열 정부 경제팀의 주요 고위급 인사는 국가채무 비율 60%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이 선을 넘을 경우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대외 신인도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 정부 경제팀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대외 변수에 따라 우리나라 경기 흐름이 더 악화할 수 있는 만큼 윤 대통령 임기 내내 재정 여건 개선 작업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국정과제 5번째에 '재정 정상화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올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는 재정이 민간 주도 성장의 마중물 역할에 충실하면서 위기 시 우리 경제 최후의 보루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건전성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추 부총리는 "건전 재정 기조를 확립하기 위해 저성과 사업에 대한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과 비과세·감면 정비를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