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저성장·저물가·저금리’라는 환경에서 출범했다. 가계부채는 증가 추세였지만, 낮은 금리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 등 내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작은 수준이었다. 글로벌 ‘반도체 대호황’에 힘입어 그해 무역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치인 952억달러를 달성했다. 정부는 당시 최대 과제를 소비 회복과 잠재 성장률 제고라고 판단하고, 근로자의 소득을 높여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는 ‘저성장·고물가’ 상황에 직면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충격이 확산되는 가운데 올해 들어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원·달러 환율도 1200원대로 올라서는 등 경기를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862조원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다음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한 부양책을 펼치면서 물가도 잡고,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가계부채도 관리해야 하는 난제에 봉착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반송큰시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경제 여건이 5년 사이 급변한 데는 2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 사태가 공급망 차질을 유발하면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을 밀어올린 탓에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됐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이 물가를 더 자극하고 가계부채 문제를 키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투기 억제’에 방점을 둔 부동산 규제가 역으로 패닉바잉(공황 구매)을 포함한 수요를 이끌어내면서 집값이 뛰었고, 코로나로 저금리 시대가 열리자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 폭증하면서 가계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래픽=손민균

◇ 1862조 ‘부채 폭탄’…경기 회복 발목 잡을까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신용(가계 빚) 잔액은 1862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과 주식시장 호황에 따른 영끌·빚투(빚내서 투자) 대출이 급증한 결과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급감해 생계가 어려워진 자영업자의 대출도 크게 늘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코로나 기간 늘어난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6.1%로 최근 10년 사이 2배 이상 뛰어 부채가 많은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무디스는 “가계부채와 빠르게 진행 중인 인구 고령화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소득에 비해 높은 가계부채는 소비를 제한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대내외 충격 발생 시 금융위기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빚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4%대 물가 상승과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이 겹치면서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은 커지고, 소비 여력은 더 줄어들고 있다. 실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73.4%에 육박했다. 지난해 4분기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51조9000억원 늘어날 동안 빚은 134조7000억원 증가한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부담이 가중되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대출자의 부실화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p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 규모가 2조9000억원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총 4차례, 1%포인트(p) 올린 점을 감안하면 연 이자부담도 11조6000억원 이상 늘어나게 된다. 연말까지 1~2차례 추가 금리인상이 예정된 만큼,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중국 경기 둔화 등 대외 리스크가 몰아치는 가운데 자산거품이 꺼지면서 가계부채 부실화가 현실화될 경우 실물경제도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가계와 정부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큰 문제 중 하나”라며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 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역대 최고로 올라왔다”며 “현실화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단순히 가계·기업의 부채 부실화로 인한 소비 위축과 경기 둔화에 그치지 않고 국가신용도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외화자금 유출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 고환율·무역수지 적자까지…대외 신인도 ‘흔들’

빚더미에 앉은 것은 가계 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친 결과 국가채무는 지난해 965조30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4년간 305조원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가계와 기업, 정부의 부채는 자금순환표 기준 5477조4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5000조원을 넘어섰다. GDP의 2.7배에 달하는 규모다.

가계부채와 국가채무가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수준까지 급증한 상황에서 최근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달 20일 기준 연간 누계 무역수지는 91억5700만달러 적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77억6900만달러 흑자)에 비해 적자 전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공급망 차질로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수입액이 수출액을 넘어선 영향이다.

지난 2015년 처음 900억달러를 돌파한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17년 952억달러를 찍은 뒤 감소세를 이어왔다. 2018년 697억달러, 2019년 392억달러로 줄었고, 코로나 여파로 2020년에는 449억달러의 ‘불황형 흑자’를 냈고, 지난해 293억달러로 감소했다.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원·달러 환율마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12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 같은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 늘기 때문에 무역수지도 악화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2일 기준 1239원에 마감했다. 다음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환율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어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 흐름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손민균

무역수지 적자 행보가 지속되면서 경상수지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8억1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다만 흑자폭은 1년 전에 비해 50억달러 가까이 줄었다. 경상수지에 포함되는 무역수지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재정적자에 이어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는 ‘쌍둥이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낸 ‘재정수지와 경상수지의 관계 분석 보고서에서 “다른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재정수지가 악화하면 경상수지도 나빠질 수 있다”면서 “해당 영향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제 전반에 전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쌍둥이 적자로 외국인 투자가 위축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점만 강조하면서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올라 단기적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를 내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차기 정부가 민간 부문의 활력을 불어넣어 국내 기업의 생산성과 수출 경쟁력을 키우는 정책을 펼치는 방식으로 무역수지 흑자 관리에 나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입장에서는 손해”라면서 “새 정부에서 민간 주도의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