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1일 소셜미디어(SNS)에 적은 이 걱정 가득한 전망이 현실로 바뀌었다. 19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에 의해서다. 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2.5%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0%로 각각 제시했다. 불과 한 달 전의 전망과 비교해 경제 성장률은 0.5%포인트(p)나 낮췄고, 소비자물가는 0.9%p나 상향 조정했다. ‘저성장·고물가’ 공포가 구체적 수치로 다가온 것이다.

다음 달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로선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졌다. 성장률이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어 사전적 의미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닥치는 복합적인 경제위기 징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 흐름이 한국에만 해당하는 이슈가 아니라고 해도 그 충격은 언제든 민심 악화로 돌변해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동력을 흔들 수 있다. 윤 당선인이 경제 활성화에 방점을 둔 1기 내각을 구성하고 연일 경기 대응 총력을 다짐하고 있지만, 대내외 경제를 둘러싼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일수록 차기 정부가 경제정책의 구체적 방향성을 수시로 제시해 경제 주체들 사이에 만연하게 퍼진 불안 심리를 어루만져야 한다고 했다. 또 금리 인상의 부작용을 각오하고서라도 물가 대응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조언과 나랏돈 풀기 일변도의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되돌려 재정 건전성 확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음식점이 기존 가격표 위에 새로운 가격표를 붙여놨다. / 연합뉴스

◇ “돈 쓰기 겁나요”…짙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

19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와 정부 등에 따르면, 인수위는 최근 주요 경제 부처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악화한 글로벌 경기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볼 것과 어수선한 정권 교체 과정에서도 대내외 경제 동향 파악과 보고에 충실히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최근 경제 전망 지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을 인수위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인수위의 고민은 이날 IMF가 발표한 WEO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3월 전망치(3.0%)보다 0.5%p 낮은 2.5%로 전망됐다. 이는 최근 국내외 각종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한국 경제 전망 중 가장 비관적인 시각이다. IMF는 이웃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2.4%로 내다봤다. 대표적인 저성장 국가와 한국을 동일 선상에 놓기 시작한 것이다.

IMF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동시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로 상향 조정하면서 한국 경제가 ‘저성장-고물가’ 기조로 접어들었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거시경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경기가 둔화하는데 역설적으로 물가는 오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서민에게 전가된다. 단적인 예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칼국수 평균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8000원을 돌파했다. 냉면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9.7% 오른 9962원으로, 1만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60대 가정주부 김서경 씨는 “은퇴자 가정이라 돈 쓰는 게 쉽지 않은데 물가가 치솟아 식빵 하나 라면 한 봉지 사기도 겁난다”며 “연일 경제와 관련해 부정적인 소식만 전해져 마음이 안 좋고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그래픽=이은현

◇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국 경기 둔화 악재까지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원인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이어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다. 주요 자원국 간 전쟁 자체도 글로벌 공급망에 큰 악재인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전쟁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가뜩이나 망가진 공급망 질서는 더 무너지고 물가가 받는 상승 압력은 한층 거세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21일 발표한 ‘우크라이나 사태와 대러 제재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의 요인으로 작용해 2021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다”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중국 경기의 둔화도 IMF가 한국 경제 전망을 어둡게 관측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중국은 지난해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따른 부동산 시장 위축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도시 봉쇄, 전력난 등의 악재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쪼그라든 상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 총액은 6444억달러인데, 이 중 25.2%인 1629억달러가 중국을 향한다. 중국의 성장 엔진이 느려지면 그 충격을 한국이 정통으로 맞는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IMF뿐 아니라 아시아개발은행(ADB)·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다른 주요 국내외 기관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 전망과 물가 흐름을 부정적으로 본다. 새 정부가 한덕수·추경호·김대기 등 경제통 3인을 각각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대통령 비서실장에 낙점하며 정책 1순위가 경제임을 시사한 이유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5일 인수위에 “우리 경제의 복합 위기 징후가 뚜렷하고, 특히 물가가 심상치 않다”며 총력 대응을 예고했다.

중국 상하이 봉쇄가 한 달째 지속한 여파로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4월 20일까지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광주 광산구 GGM 공장 야적장이 텅 비어있다. / 연합뉴스

◇ “경제정책 방향 명확히 제시하면 시장 대응에 도움”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일수록 차기 정부가 경제 위기 대응의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해 시장에 퍼진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달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 정부가 물가 통제를 정책 1순위에 올리는 게 급선무라는 조언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요즘 많은 이가 피부로 느끼듯 물가가 치솟으면 정책 약발이 잘 안 먹히게 되고, 그 고통은 즉각 국민을 향한다”며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출금리까지 올라 힘들다는 의견이 있던데, 제때 해야 할 금리 인상을 망설이면 결국에는 더 큰 금리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 정부의 재정 지출 기조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윤 당선인과 새 정부 경제팀은 재정 건전성 확보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확장적 재정 지출을 어떻게 축소할 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고 있다. 특히 윤 당선인이 공을 들이는 소상공인 손실 보전 50조원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 구상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50조원을 모두 집행하면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 당선인은 재정 건전성을 여러 번 강조해왔는데, 한발 더 나아가 건전성 판단의 기준점까지 밝히는 식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며 “새 정부 경제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질수록 시장 참여자들은 각자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면서 경기 둔화에 대비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