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물가와 금리 안정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차기 경제수장들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대응과 경제 성장을 목표로 긴밀한 공조를 예고하면서 향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합, 일명 '폴리시 믹스(policy mix)'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12일 정부와 금융업계는 오는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나라 경제사령탑인 기재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간 협력이 강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화된 인플레이션, 가계부채와 국가부채 급증, 경기 둔화 우려, 미국의 긴축에 따른 국내 국채 금리 폭등 등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각종 리스크(위험)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정부와 중앙은행 어느 한쪽의 독립적인 대응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추경호 후보자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1960년생 동갑내기에 거시경제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창용 후보자가 2009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었을 당시 추경호 후보자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미 친분이 있는 두 후보자가 연일 정부와 중앙은행간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차기 정부에서는 보다 섬세한 정책 조합이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추 후보자는 지난 10일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의 만남이 뉴스가 안 될 정도로 자주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도 지난 1일 "물가 안정만 보면서 독립성을 강조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달라졌다"면서 "정부와 대화를 통해 정책을 조율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간 시장에서는 물가 안정을 목표로 기준금리 인상을 추진해온 한국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으로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서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엇박자라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됐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공격적인 긴축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상황인데,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50조원 규모의 추경을 포함한 정부의 '돈 풀기' 정책은 물가 상승을 더 자극한다는 점에서 정책 조합이 조화롭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추 후보자도 이런 평가를 의식한 듯 보다 정교한 폴리시 믹스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추경을 편성 하면 물가와 국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 데 대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로 대응해야 하고, 재정 쪽에서도 좀 더 긴축적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게 거시적인 해법이지만, 그 속에서도 거시적인 안정 노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실 보상 문제라든지 민생 안정 대책이라든지 물가 불안 영향을 최소화할 정책 조합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경제 성장률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리인상을 통한 긴축과 정부 주도의 유동성 확대 기조는 불가피하지만, 큰 틀에서의 재정·통화정책의 효과가 상쇄되지 않도록 한국은행과 호흡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채권시장 불안과 관련해서는 한국은행과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추 후보자는 "국고채 시장 안정화 노력은 늘 중요한 과제"라며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함께 풀어가야 할 이슈이며 시장을 면밀히 살피겠다"고 했다. 연준이 이르면 5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에 이날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약 9년 만에 연 3%를 돌파하는 등 급등세를 이어갔다.
이 후보자도 통화정책과 관련해 이른바 '3C'를 강조하면서 정부와의 조율 의지를 드러냈다. 통화정책 방향은 포괄적(comprehensive)이고 일관적(consistent)이며 협력적(coordinated)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통화정책 뿐만 아니라 재정정책, 구조조정정책 등을 전반적으로 다 같이 보고, 정부와 협력해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당연히 중앙은행은 물가에 더 무게를 두고 정책을 운용하지만, 중앙은행이 독립적이라고 해서 물가만 보면서 정부와 갈등을 빚던 예전 상황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와 관련, 시장에서는 최근 급등한 국채 금리 안정을 위한 기재부와 한은의 정책 공조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1일 채권시장에서는 국채 3년물 금리가 하루에만 19.9bp(1bp=0.01%p) 급등해 9년 8개월만에 최고치인 3.186%까지 치솟았다. 이날 국채 3년물 금리는 30년물 금리(3.146%)를 추월해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 침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국은행이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에 발맞춰 오는 1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금리 폭등을 이끌긴 했지만, 가파른 금리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경기 하강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차기 정부 출범 후 대규모 추경이 예고된 상황에서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는 물론 민간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이자상환 부담을 키운다는 점에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은행이 오는 금통위 이후 최근의 금리 폭등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 4일 채권시장 안정을 목표로 2조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단행한 바 있다.
국내 한 금융투자회사의 채권운용본부장은 "추경호 후보자가 기자간담회에서 국채 금리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만큼, 거시경제 안정에 어려움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추경을 위한 국채 발행액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한국은행도 최근의 금리 폭등에 우려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시장 안정을 위한 국고채 단순 매입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