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 연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앙은행의 '디지털 달러' 발행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트코인이 주축이 된 가상화폐 시장이 3조달러(약 3700조원) 규모로 성장하면서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데다,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도 통화 패권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 美 '디지털 달러' 효용성 연구 시작
1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각) 가상자산의 책임감 있는 혁신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디지털 달러'로 불리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연구에 착수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낸 설명자료에서 "가상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 시장이 최근 몇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면서 투자자 보호와 책임감 있는 혁신을 통해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금융안정과 국가 안보 강화 차원에서 가상화폐의 위험과 이점을 분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은 2016년 140억달러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3조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16%(4000만명)이 가상화폐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가상화폐 시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투자자 보호 방안 등 가상화폐 관련 위험을 줄이기 위한 규제의 틀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을 중심으로 CBDC 발행의 필요성을 검토하라는 내용도 담았다. CBDC란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을 기반으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말한다. 그간 미국은 CBDC 발행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세계 100여개국 중앙은행이 이미 CDBC 연구를 진행 중인 만큼 미 정부 차원에서도 '디지털 달러'의 득과 실을 따져본 뒤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은 "CBDC 발행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될 경우 CBDC 연구개발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시험대 오른 '달러 패권'
이번 행정명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된 러시아가 가상화폐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제재를 피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나온 조치라 더 주목된다. 지난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 주요 은행을 SWIFT에서 배제한 뒤 러시아 루블화가 30% 가량 폭락했고, 러시아에서는 비트코인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상용화에 돌입하면서 미 달러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미국이 가상화폐 시장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 계기로 꼽힌다. 가상화폐 기축통화인 달러화 체제를 무너뜨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미 정부도 이를 연구해 적절한 규제를 만들어 디지털 영역에서도 달러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밖에 중국이 SWIFT 결제망에서 배제된 러시아를 계속 지원하기로 하면서 달러 패권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 위안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위안화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중국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는 "러시아의 SWIFT 배제는 위안화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달러화 없이 공존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위안화의 국제화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견해다.
◇ 가상화폐에 호재? 비트코인 10% 급등
미국이 공식적으로 가상화폐 연구에 돌입하면서 관련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미국이 행정명령을 발표한 직후 비트코인 가격도 10% 가까이 뛰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가상화폐가 일부분 제도권 금융에 편입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만, 공신력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 달러' 발행과 함께 투자자 보호 조치가 마련된 가상자산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커졌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가격 변동성 등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에스워 프라사드 미 코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가상자산 행정명령은 궁극적으로 가상자산 산업에 적법성을 부여할 수 있어 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가상화폐 활성화 공약을 내세우면서 앞으로 투자자 보호 조치가 마련되는 등 관련 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가상자산 거래소를 방문해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